고객 여권 소지했다고 인신매매범으로 조사 받아

2007년 10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폴란드 이민자 로버트 지칸스키 씨를 전기충격기(테이저)로 사망케 해 국제적 공분을 샀던 캐나다의 관문 밴쿠버 국제공항이 또다시 인권침해로 비판 여론을 받고 있다.

일간 글로브 앤드 메일은 19일, 캐나다에서 25년을 산 최고 경력의 중국계 변호사가 밴쿠버 공항에서 인신매매범으로 몰려 수갑을 차고 조사를 받느라 비행기를 놓치는 봉변을 당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메일 지는 밴쿠버 인근 코퀴틀람에서 개업 중인 동동 황(51) 변호사가 지난 17일 캐나다에서 단기 취업을 원하는 중국인 고객 15명의 여권을 소지한 채 베이징 발 비행기를 타려다 체포돼 한 시간 동안 심문을 받았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한 공항 직원이 탑승 직전 그의 손가방 속에서 중국 여권을 무더기로 발견한 후 보안 요원을 불렀으며, 그 보안요원은 변호사라고 신분을 밝힌 황 변호사의 말은 무시한 채 다짜고짜 등 뒤로 수갑을 채워 끌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황 변호사는 오타와대학에서 상법을 전공한 법학박사(Ph.D) 출신으로, 캐나다 내 최고의 법률회사에서 근무한 경력과 중국 변호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사이먼프레이저대학(SFU) 대학에서 강의까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변호사는 "다른 사람 여권을 소지한 것만으로 범법 행위가 성립되지 않는 데, 공항 요원들이 나를 마치 현행범 다루듯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채워 연행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항 당국에 정식 사과와 적절한 손해 보상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그는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변호사며, 취업 비자를 거부당한 중국인들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하기 위해 여권을 소지한 것이란 점을 되풀이 설명했으나, 보안요원들은 그가 인신매매범이란 의혹을 풀지 않은 채 심문을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황 변호사는 결국 자신이 평소 가깝게 지내는 다른 거물급 변호사들과 통화에 성공한 후 이들의 도움으로 1시간 만에 풀려났지만, 비행기는 떠난 후였다.

그가 보안요원들에게 비행기를 놓친 데 대해 항의하자 보안요원들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라는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고 메일 지는 전했다.

황 변호사는 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공공 장소에서 난생 처음 수갑을 차는 수모를 당한 것은 아무래도 아시안에 대한 인종적 편견이 작용한 결과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신문은 황 변호사가 캐나다에서 오래 거주했지만, 여전히 중국말 액센트가 강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7년 영어를 못하는 폴란드 이민자 지칸스키 씨는 지난 10월 14일 밴쿠버 공항에서 10시간 이상 입국수속이 지연돼 기다리던 중 경찰이 발사한 전기충격기에 맞아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한편, 밴쿠버 공항은 한국인 관광객의 입국 거부율이 유난히 높은 공항으로도 유명하다.

(밴쿠버연합뉴스) 신상인 통신원 sangin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