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정적 관계인 대통령과 전 총리간의 권력쟁탈전으로 촉발돼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까지 번졌던 파키스탄의 극심한 정국 혼란이 시위 발생 나흘만에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하지만 이번 사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지원을 받을 정도로 경제상황이 악화된데다 핵개발 및 탈레반 세력 등으로 서방 국가들과 마찰을 빚고 있는 파키스탄에 더욱 큰 부담을 안길 것으로 전망된다.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16일 정국 안정을 위해 지난 2007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대통령에 의해 해임당한 이프티카르 초우더리 전 대법원장을 복직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초우더리 전 대법원장은 작년 8월 철권 통치 9년만에 권좌에서 축출된 무샤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끊임없이 반기를 들었으며 파키스탄내에서 ‘대쪽 판사’로 유명한 인물이다.지난 12일부터 야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를 이끄는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와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파키스탄 전역에서 벌어졌던 반정부 대장정 시위는 초우더리의 복직 발표가 나면서 즉각 중단됐다.

작년 9월 의회에서 대통령에 선출된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는 샤리프 전 총리와 연합하면서 초우더리의 석방을 약속했지만,대통령이 된 후 초우더리의 복직을 거부해 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2007년 12월 암살당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인 자르다리 대통령은 초우더리 전 대법원장을 복귀시킬 경우 자신의 과거 부패 혐의가 들춰져 재기소되는 것을 우려했다.

자르다리 대통령은 또 샤리프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가택 연금 조치를 내렸으며,샤리프의 동생으로 펀자브의 주총리인 샤바즈 샤리프를 해임했다.하지만 정부에 의해 3일간 라호르에 있는 가택에 연금됐던 제1야당 PML-N 지도자 샤리프는 지난 15일 지지자들이 기중기를 동원해 경찰의 봉쇄망을 뚫은 후 라호르 시내에서 수도인 이슬라마바드까지 300㎞ 대장정 시위대에 합류했다.샤리프는 시위 차량에서 현지 방송과 전화 인터뷰를 갖고 “많은 이들이 압도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는 혁명의 전주곡”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자르다리 대통령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의 정당성을 스스로 저버리고 무샤라프의 철권 통치방식으로 돌아와 버렸다”며 “자르다리가 공황 상태에 빠져 정권 유지를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고 보도했다.또 지오TV 등 파키스탄 현지 언론들은 미국과 영국의 외교관들이 자르다리 대통령과 샤리프 전 총리 양측의 중재를 위해 접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