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예산안과 개혁 과제를 둘러싸고 미국 내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격돌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 개혁,부유층 증세,기업 해외 수익 과세 등이 주요 쟁점이다. 자신의 철학을 국정에 관철시키려는 오바마 대통령은 정가에 이익단체들의 입김을 불어넣는 로비스트들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향후 10년간 6300억달러를 투입,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시도했다가 고배를 마신 사업을 재추진하는 셈이다. 당시에도 보수 · 혁신 간 대결이 벌어졌으나 수적으로 우세한 보수세력이 완강히 반대하는 바람에 건강보험제도 개혁은 흐지부지됐다.

건보개혁ㆍ부유층 증세…美진보-보수 맞대결
이번에는 진보진영이 우세한 형국이다. 개혁 예산안에 대한 지지세 결집과 응집력이 보수진영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미국진보센터(CAP)가 전면에 나섰다. CAP는 정권인수팀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가 설립한 싱크탱크다. '의료보험 국민연합(NCHC)' '무브온' 같은 진보단체도 합세했다. 헤지펀드계의 거물인 조지 소로스와 엑설론전기,자이언트푸드 등 일부 기업의 지원도 받고 있다.

보수세력은 "미국민 대다수는 연방정부가 건강보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진보단체들에 비해 열세라는 게 자체 평가다. 버라이언 존스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 홍보담당 국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에는 민주당 진영이 풀뿌리 서민층 지지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으나 지금은 열정과 조직력이 다르다"고 시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간 소득 20만달러 이상 부유층에 대한 기존 감세 혜택을 2011년부터 없애 사실상 증세하겠다는 정책 역시 첨예한 전선이다. 공화당 진영은 '사회주의식' 부의 재분배 정책이라고 창을 겨누고 있다. 지난해 대선 기간 중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도 오바마 후보의 이 같은 공약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공화당의 짐 드민트 상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의회 연설에서 부유층을 공격한 것과 관련,"우리는 세계 최고의 사회주의 세일즈맨이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고 맹비난했다.

공화당 대선주자이기도 했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지난달 말 젊은 보수층 모임인 '보수 정치행동 컨퍼런스'에서 "레닌과 스탈린이 좋아할 것"이라면서 "(오바마 정부 들어) 사회주의 공화국이 돼간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관계자들은 "고소득자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소비시장이 더욱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며 경기침체에 따른 이중고를 우려했다. 실리콘밸리 중심 지역의 하나인 샌타클라라 카운티는 관련 부유세 대상이 4만3000명으로 추산된다며 세금 부담이 약 두 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키로 한 기업들의 해외 수익 과세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진보세력은 기업들이 외국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해외 조세회피처에서 운용한 탓에 막대한 세원이 유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기업들과 보수세력은 "합법적이었던 활동을 왜 새로 규제하느냐"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각종 이익단체들이 로비스트들을 앞세워 예산안과 개혁 과제의 진로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경고탄을 쏘아올렸다.

지난주 주례 라디오 · 인터넷 연설에서 "그들(로비스트)이 일전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며 "그들에 대한 나의 메시지는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