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극복이란 공통의 문제에 봉착한 미국과 중국이 양국 외교의 기본 틀을 견제에서 상생으로 전환할 조짐이다.

지난 20일 2박3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1일 인민대회당 등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과 회담을 갖고 양국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서로 협력하자는 데 합의했다. 티베트,인권,위안화 환율,보호무역주의 등 양국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민감한 문제들은 언급을 최소화하는 대신 경제위기 극복과 기후변화 문제 등 공통의 관심사에 의제가 집중됐다.

이는 금융위기로 촉발된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양국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공감대를 확인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중국의 오랜 외교철학인 구동존이(求同存異: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 둔다)'가 적용됐다는 지적이다. '구동존이'는 중 · 미 수교에 공헌한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대표적 외교철학이기도 하다. 중국은 미국의 영부인 출신으로 유력한 대선주자였으며 오바마 정부의 첫 국무장관인 클린턴 장관을 국빈급으로 예우했다.
미ㆍ중 '同舟共濟' 합창…상생으로 외교축 이동
원자바오 총리는 특히 클린턴 장관을 만나 손자병법에 나오는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뜻)'란 고사성어를 인용,양국이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했다. 클린턴 장관이 인권문제나 위안화 환율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한 데 이어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중국은 그동안 경기부양 사업에 미국산 제품을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 조항을 독약이라고 비난해 왔으나,이번 회담에서 양제츠 외교부장(장관)은 "양국은 투자와 무역 부문의 보호주의 움직임을 거부해야 한다"는 수준으로 자제했다. 양 부장은 또 "중국은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미 국채 구매에 써왔다"면서 "앞으로도 외환 운용 과정에서 안정성과 수익성을 모두 고려할 것"이라고 말해 미 국채 투자를 당장 줄이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원 총리는 지난달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이라고 지적한 데 격분,"미 국채 매입은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만 할 것"이라며 미국을 압박한 바 있다.

양국은 오는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에서 양국 간 별도의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또 부시행정부 시절 유지돼온 양국 간 전략적 경제대화 등 다양한 고위급 대화채널을 계속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오는 27~28일 베이징에서 양국 국방회담을 개최,작년 10월 미국의 대만 무기수출 이후 중단된 군사교류를 복원하기로 했다.
미ㆍ중 '同舟共濟' 합창…상생으로 외교축 이동

외교 전문가들은 "양국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이번 클린턴 장관의 방중으로 확인했다"며 "서로의 공동문제를 부각시키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돌아가는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앞으로 협력의 큰 틀을 만들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클린턴 장관은 중국을 마지막으로 일본 인도네시아 한국 중국을 잇따라 도는 취임 후 첫 아시아 4개국 순방일정을 모두 마쳤다. 미국의 외교수장 자격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한 클린턴 장관은 부시정부 시절 국무장관들과는 차별화된 이른바 '클린턴 표' 외교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적 청취 투어"(워싱턴포스트),"아시아에서 국무장관의 각본을 다시 쓰다"(뉴욕타임스)와 같은 미 주요 언론들의 기사 제목은 클린턴의 첫 순방이 남긴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