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이스라엘의 차기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총리 후보로 지명된 리쿠드당의 대표 베냐민 네타냐후는 1996년 만 46세의 나이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취임했던 강경 보수파 정치인이다.

1999년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대 아랍 강경일변도 정책을 구사했던 네타냐후 대표의 리쿠드당은 지난 10일 총선에서 치피 리브니 대표의 카디마당에 1석 차로 패했지만, 보수 진영의 약진에 힘입어 재집권의 기회를 맞았다.

전제 120석의 과반을 차지한 보수 정당들의 지도자들이 시몬 페레스 대통령에게 다수당 대표인 리브니 장관이 아닌, 네타냐후 대표를 총리 후보로 추천한 것이다.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비비(BIbi)'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네타냐후 대표는 선거기간 내내 자신이 집권하면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이란의 대리세력'인 하마스 체제를 와해시킬 것이라고 공언했고, 카디마당이 주축이 되어 추진해왔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도 재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그가 구성하게 될 새 연립정부는 `땅과 평화'의 교환을 내세우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평화협상 체결을 시도했던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의 현 연립정부와 구별되는 보수적인 중동 정책을 펴나갈 개연성이 매우 높다.

1949년 10월 이스라엘에서 출생한 네타냐후는 사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고등학교에 다녔고, 1967년 귀국해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군 복무를 하던 중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으로 납치된 벨기에의 사베나 항공기 구출작전에 참여했다가 부상하기도 했다.

그는 1976년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에 납치된 프랑스 여객기를 구출하기 위한 `엔테베 작전'에서 이스라엘 특수부대의 지휘관이었던 친형 요나탄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테러리즘에 대한 공부에 전념해 3권의 테러 관련 전문서를 내기도 했다.

대위로 전역한 네타냐후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건축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1982년 주미 부대사로 정계에 입문해 1988년에 초선 의원이 됐다.

그는 2003년 아리엘 샤론 총리의 연립정부에서 재무장관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9월 샤론 총리가 가자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철수를 강행한 데 반발해 장관직을 사임한 바 있다.

그의 리쿠드당은 2005년 11월 샤론 총리가 지지자들을 이끌고 탈당해 카디마당을 창당하는 바람에 이듬해 총선에서 고작 12석을 얻는 참패를 당했었다.

네타냐후 대표는 미국식 억양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세번째 부인 사라와의 사이에 자녀 2명과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두고 있다.

항공사 여승무원으로 일했던 사라는 네타냐후가 총리로 재직할 당시 사치스러운 생활태도 등으로 이스라엘 언론매체의 도마에 자주 올랐었다.

(카이로연합뉴스) 고웅석 특파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