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상무장관 포기 계기로 본격화

저드 그레그 공화당 상원의원의 상무장관직 포기 이면에는 미국 연방 하원 의석의 배분과 선거구 획정의 기초자료인 2010년 인구 센서스를 둘러싼 민주, 공화 양당의 신경전이 개입돼 있다고 시사 주간 타임이 15일 보도했다.

타임은 인터넷판에서 그레그 의원이 12일 상무장관 지명 반납 사실을 발표하면서 2010년 센서스 문제에 대한 백악관과의 이견을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그레그 의원이 상무장관직을 반납한 당일 저녁 보수계의 폭스 뉴스는 "백악관이 센서스 과정에 대한 장악을 시도 중"이라 보도했고, 게스트로 출연한 부시 행정부의 책사 칼 로브도 동감을 표시했다.

공화당 하원의원들도 일제히 "백악관이 센서스 결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이를 토대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려는 비밀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문제의 발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레그 의원을 인구조사국을 담당하는 상무장관에 지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민주당 지구당원과 소수인종 관련 단체들은 그레그가 상무장관이 되면 센서스 조사에서 누락될 수 있는 소수인종 주민 수를 반영하기 위한 샘플링 기법을 보완적으로 사용하는 데 반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인구조사국장은 백악관과 긴밀히 협력해 업무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우려 불식을 시도했고, 허핑톤포스트는 "민주당원 및 소수인종 단체들이 그레그 장관이 인구조사국을 감독하지 않을 것이란 발표에 안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보수계 단체들은 즉각 "백악관이 인구조사국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며 발끈했고, 공화당도 "백악관이 센서스의 정치화를 시도 중"이라고 비난공세를 계속하자 백악관은 "정부는 인구조사국을 상무국 관할에서 제외할 계획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인구 센서스를 놓고 미국의 여야가 신경전을 펴는 배경에는 센서스 결과가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의미가 간단치 않기 때문.
미국은 1790년 이후 10년 단위로 인구 센서스를 실시해 왔고, 이 결과를 토대로 인구비례에 따라 하원의석을 재배분하고, 선거구를 다시 획정해 센서스 결과는 정치지형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해 왔다.

또 연방 정부가 각 주 정부나 시 정부에 주는 보조금이나 다른 지출예산 배분의 기준이 되는 등 지자체의 재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 예로 부시 정권 때 실세였던 공화당의 톰 딜레이 하원 원내대표는 2000년 센서스 결과를 토대로 텍사스주 선거구 재획정을 주도해 공화당 의석이 6석 증가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정치인들의 정치생명까지도 좌우할 2010년 센서스가 정권교체로 30여년 만에 민주당 정권하에서 실시됨에 따라 공화당이 촉각을 세우는 것은 당연지사.
문제는 센서스를 하더라도 정확한 인구 통계를 산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한 예로 1990년 센서스에서 이민자이거나 도심에 거주하는 흑인 등 소수인종을 중심으로 대략 800만 명이 누락된 반면, 백인들은 400여만 명이 중복 계산됐다.

특히 최근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단속을 우려해 이민자들은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어린이들 또한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센서스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통계 모델링이나 샘플링 기법을 도입해 사용할 수도 있지만 연방 대법원은 1999년 이들 기법을 의석을 재배분하는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판결했고, 부시 행정부는 샘플링 기법의 사용을 포기했다.

인구 센서스를 둘러싼 최근의 신경전은 정치공방 속에서 부풀려진 측면도 있고, 그레그 의원도 상무장관직 반납 사유 중 센서스 문제는 `사소한 것'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센서스 조사가 1년 앞으로 다가온 만큼 양당 간 신경전은 이제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라고 타임은 지적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a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