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우리나라에서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치료를 그만두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이 나온 가운데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져 논쟁이 뜨겁게 일고 있다.

이탈리아 통신사 안사(ANSA)는 식물인간 상태인 엘루아나 엔글라로(여·38)가 지난 9일 음식물 공급 중단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10일 보도했다.

엔글라로는 17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까지 식물인간 상태로 살아왔다. 지난해 엔글라로의 아버지가 이탈리아 고등법원에서 음식물을 공급하는 튜브를 제거해도 좋다는 판결을 받고난 후, 엔글라로의 주치의는 지난 6일 음식물 공급을 중단했다. 튜브를 제거한지 3일이 못돼 사망한 것이다. 이것은 엔글라로가 살아 생전에 원해왔던 것이었다고 안사는 전했다.

하지만 바티칸의 지원을 받는 이탈리아 정부는 식물인간 환자에 대해 음식물 공급 중단을 막는 법안이 통과될 때가지 엔글라로의 목숨을 연명할 것을 주장해 왔다.

바티칸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내각은 엔글라로 사망 전인 지난 6일 음식물 공급 중단을 막기 위해 긴급 총리령을 공포했다. 하지만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그 자리에서 기각시켰다. 결국 엔글라로가 사망한 9일 이탈리아 정부는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로마대학의 헌법학 교수 알렉산드로 페이스는 이날 "이미 지난 판결에서 법원이 엔글라로의 튜브를 제거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정부가 통과시킨 법안은 엔글라로에게 적용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이 사건을 놓고 존엄사를 허용하는 쪽과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갈리어 엔글라로가 사망한 병원 앞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존엄사 반대론자들은 엔글라로를 부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안사는 전했다.

극우파 로마 시장 자이아니 알레마노는 "10일 저녁 내내 콜레세움은 엔글라로의 죽음을 애도하며 불을 밝힐 것"이라며 "인간의 목숨은 반드시 구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바티칸 대변인도 앵그로라의 경우를 빗대어 그가 이 지경까지 오게된 것을 반성해야 된다고 꼬집었다.

한편 한국에서도 존엄사와 관련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세브란스병원이 법원의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명백히 회생할 수 없는 환자의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며 환영했다.

반면 천주교계는 "산소호흡기 사용 등 단순 연명을 위한 의료행위에는 반대하지만 '존엄사' 적용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경닷컴 김은영 기자 mellis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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