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외교정책의 새로운 톤' 역설..관련국도 호응
"악은 각론에"..더 많은 신뢰 축적 필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미국'은 사실상 첫 외교 무대인 제45회 뮌헨 국제안보회의에서 대외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6-8일 열린 이번 회의에는 세계 각국의 주요 정치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이 대거 집결, 새로운 국제안보 질서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으나 모든 언론과 참석자들의 시선은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에 나선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에 집중됐다.

그는 특히 7일 연설에서 '외교정책의 새로운 톤'으로 이란과 대화 용의, 러시아와 관계 개선 추진 등을 공언하면서 관련국들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악은 각론에 있다"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부총리의 말처럼 화해 분위기 속에서도 좀처럼 좁히기 어려운 간극들도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독일, 프랑스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에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하는 미국의 신 외교정책이 만개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국들간 신뢰축적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미-러 리셋버튼 누르자" = 바이든 부통령은 7일 연설에서 미-러 관계를 개선할 시기가 됐다면서 "양국 관계의 재시동 단추를 누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이란의 점증하는 (군사적)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계속 개발할 것"이라면서도 "기술이 입증되고 비용이 효율적일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러시아와의 협상 여지를 뒀다.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패퇴시키기 위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러시아가 협력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이바노프 부총리는 바이든 부통령의 연설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뒤 특히 '양국 관계의 재가동 단추를 다시 누르자', '러시아와 함께 협력할 수 있고, 협력해야 하는 분야를 되살리자'는 등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고 화답했다.

이바노프 부총리는 또 "미국의 새 행정부가 양국간 대화 복원을 위해 아주 강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서 "앞으로 양국은 상대의 의견과 평가에 귀기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바노프 부총리는 이와 함께 미국이 동유럽의 MD체제 구축계획을 재고하면 러시아도 폴란드 국경 인근에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그러나 "악은 각론에 있다"고 말해 관계 진전에 대한 양국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협상과정에서 갈등이 재연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또 미국의 제안에 즉각 화답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면서 MD체제 구축에 대한 반대 입장을 확인했다.

키르기스스탄이 미 공군기지를 폐쇄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미국과 나토의 요청에 대해서도 러시아의 20억달러 차관 제공과 미군기지 폐쇄는 무관하다며 거부했다.

바이든 부통령도 전날 연설에서 미국은 그루지야 문제를 포함한 일부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러시아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고 말해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위해 무조건 양보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 대(對) 이란 '당근과 채찍'정책 유효 = 바이든 부통령은 이란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도 '채찍'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전쟁의 위험, 그리고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위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위기를 사전에 막기 위해 필요할 경우에는 이란에 대해 선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부통령은 그러나 만약 이란이 핵 계획을 포기하고 테러리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면 '의미있는 인센티브'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이란의 알리 라니자니 국회의장은 미국의 대화의지가 긍정적 신호이라면서 이란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라니자니 의장은 또 "직접 대화가 미국에 황금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미국이 충분히 화해의 신호를 보내면 이란도 그런 방식으로 화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가 웃음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면서 수십년동안 지속된 미국의 실패한 중동정책으로 말할 수 없는 인도주의적 고통이 발생했다는 점을 미국 정부가 먼저 사과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AP 통신은 라리자니 의장이 7일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와 만나 미국의 대화 제의에 큰 관심을 보였다면서 그러나 '당근과 채찍' 정책에 대해서는 수용불가 입장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 "부담 나누자"에 동맹국들은 시큰둥 = 바이든 부통령은 극단주의와의 싸움, 약한 정부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지원 등에서 동맹국들이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더 많이 행동할 것이라는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나쁜 뉴스는 우리의 동맹국들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특히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우방들이 미국 신정부가 새롭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병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홀브룩 아프간.파키스탄 특사는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패퇴시키는 것이 이라크 전쟁보다 훨씬 험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야프 데 후프 스헤페르 나토 사무총장은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이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증파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 강화를 원칙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병력 증파는 거론하지 않았으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 문제를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베를린연합뉴스) 김경석 특파원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