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위신 버린 파격에 여론 호전

"내가 일을 망쳐버렸다"(I screwed up)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대부로 불리는 톰 대슐 보건장관 내정자의 사퇴 직후 언론과의 회견에서 밝힌 이 한마디가 들끓던 미국의 여론을 잠재웠다.

물론, 오바마로서는 사과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백악관 `성과 관리 최고 책임자'에 임명된 낸시 킬리퍼가 바로 전날 946달러 세금의 미납 문제로 낙마했고,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도 3만4000달러의 세금 미납으로 상원 인준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화당측에서는 "오바마가 세금인상을 서두르는 이유는 자신들이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꼬는 상황이었다.

자칫 국정이 취임초부터 흔들릴 수도 있는 위기였다.

자신의 개혁이미지가 무너지면서 "저게 워싱턴 정치를 바꾸겠다던 사람의 인사냐"는 비판여론, 나아가 요즘 질타받고 있는 월가의 경영진과 다를 바 없는 것 처럼 비난 받는 상황에 대해 오바마는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또 선거때부터 들어왔던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정면으로 헤쳐 나갈 돌파구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해도 오바마의 이 같은 모습은 과거 백악관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 보도했다.

애덤 나고니 백악관 출입기자는 `화이트하우스 메모'에서 "조지 부시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었다"면서 "부시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백악관 전임자들이 사과에 인색했던 이유는 부시의 생각처럼 자칫 대통령의 힘과 신비스런 분위기가 깎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컸지만, 자칫 모든 일을 대통령이 책임진다고 할 경우 대통령에게는 책임질 일이 너무 많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단발적 사안에 대해 섣부른 사과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 관행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오바마의 `발가벗은 사과'는 뭔가 전임자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부각시킨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부시의 오랜 보좌역을 지낸 마크 매키넌는 "정부 출범초기에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 "그러나 이번 행동은 오바마가 진실하고 소박한 것으로 비쳐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실수했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오랜 기간 그들은 백악관의 어느 누구로부터도 이런 말을 들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었던 것은 변명과 부인뿐이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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