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실직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미국인들이 소비를 줄이고 대신 저축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 정부 발표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미국의 저축률은 2.9%로 높아졌습니다.3분기 1.2%,1년 전의 1% 미만에 비쳐볼 때 뚜렷한 증가세로 돌아선 것입니다.미국 저축률은 극심한 경기침체기 였던 1980년대 초 10%를 기록한 뒤 계속 떨어지는 추세입니다.전문가들은 이번 불황을 계기로 미국의 저축률이 6%까지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소비가 줄고 저축이 느는 현상은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전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자인 미국이 지갑을 닫았다는 것은 글로벌 전체 경제가 당분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하지만 길게 보면 빚에 의존해 소비를 과도하게 즐기던 미국경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미국은 지난 14년 간 소비가 소득을 초과했고 그 결과 과도한 부채를 지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이런 소비와 소득 간의 갭을 사실상 중국이 메워왔습니다.중국은 매년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저축률이 50%를 넘습니다.이런 불균형 현상이 빚어지지 않았으면 미국의 부동산 버블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미국과 중국 간 이런 불균형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중국 등 아시아는 계속 돈이 넘쳐나고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 이 돈을 계속 빌려오는 현상이 지속되면 제 2,제 3의 또다른 금융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롬비아대 교수는 “아시아에 넘쳐나는 돈을 아시아 사람들을 위해 투자하고 쓰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부 장관이 지난 달 22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세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각국이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습니다.하지만 저축성향이 높은 아시아 각국의 행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까지 소비를 줄이게 되면 세계 경제가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기침체 여파…맨해튼 임대시장까지 찬바람

경기 침체 영향으로 미국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 아파트 렌트비가 떨어진데 이어 한달 임대료를 면제해주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리얼에스테이트그룹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새 방 하나 짜리 아파트 임대 가격은 평균 5.7∼6.5%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렌트비를 따져보면 집 주인들이 원하는 가격보다 20% 가량 낮게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들어 한달 임대료를 면제해주고 심지어 세입자가 부담하던 집 소개비를 집주인이 대신 내주는 현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프리즈 프리건 할스테드프로퍼티 이사는 “각종 인센티브를 감안하면 뉴욕의 아파트 임대료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7년 보다 15% 가량 떨어진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임대료가 떨어지자 계약기간이 끝난 세입자를 붙잡기 위해 임대료를 낮춰주는 집주인도 늘고 있습니다.

월가 금융사에 근무하던 직원들이 해고되면서 전례 없이 맨해튼에 아파트가 남아도는 현상이 빚어진 것입니다.집을 팔려고 해도 제대로 팔기 어려워진 집주인들이 이를 렌트로 돌리게 되자 임대 가격도 뚝뚝 떨어지게 된 것인데요.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