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기침체가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 부자들이 사치품 구입을 줄이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 '티'를 내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일부 소매전문가들은 부자의 변화된 소비행태를 '사치품의 창피' 또는 '은밀한 부(富)'로 명명하고 있다.

일례로 어떤 부자들은 고급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는 판매원에게 밋밋한 흰 봉투에 담아달라고 요구하거나 비싼 옷이나 보석를 구입하고선 집으로 배달해달라고 하고 자신은 빈손으로 가게를 나선다는 것.
뉴욕의 최상위 부자들을 위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며 스스로도 고급품을 구입하는 루시언 배리는 27일 "부자들이 고급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는 루이뷔통이나 샤넬 봉투에 담아가길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리는 자신도 최근 1천200달러짜리 구찌 손가방을 구입한 뒤 자신이 직접 구매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지 못하도록 가게 주인에게 간단한 선물인양 포장해 집으로 배달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경기침체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소규모 제조업체 사장인 에드워드 더글러스(뉴저지 거주)는 예전처럼 고급품을 구입한다면서도 "물품 구입을 은밀히 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더글러스는 매년 바하마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데 올해엔 개인 제트기 말고 일반 항공기의 이코노미석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나이트 클럽과 고급 식당 2곳 등을 운영하는 로버트 존스도 가족여행을 갈 때 이전에는 1박에 1천달러짜리 스위트룸을 이용했으나 이젠 일반 호텔의 400달러짜리 방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장갈 때 이전처럼 개인 전용 제트기를 이용하지 않고 '합승' 제트기를 이용한다는 존스는 "우리들중 많은 사람들이 소비규모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올바른 일이라 여기고 있다"며 소비행태 변화배경을 설명했다.

부자들의 소비행태 변화로 패션업계도 덜 드러나는 색깔을 선호하는가 하면 할리우드 파티장에서도 병당 300달러짜리 와인이 예전처럼 팔리지 않는 등 변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부자들이 정말로 동료 미국인들을 돕길 원한다면 예전과 같은 소비행태를 유지해 고용이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사치품 연구소'란 단체를 만들어 부자들의 소비형태를 연구하는 밀턴 페드라자는 "우리는 부자들이 과도하게 소비하는 행태를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베벌리힐스<美캘리포니아> AP=연합뉴스) yct94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