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흠결이 드러났지만, 인준을 거부하면 더 큰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의해 재무장관에 내정된 티머시 가이트너의 인준 청문회를 앞두고 상원에 만연해 있는 분위기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세금신고 누락 사실이 드러나 의회 인준절차가 지연된 가이트너 내정자는 21일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 "부주의한 실수였으며 잘못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

좀 더 신중했었어야 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찰스 그래슬리(공화.아이오와) 상원의원은 청문회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만나 "가이트너의 세금누락 파문은 당혹스런 뉴스지만 현 단계에서 이 사안이 결격사유가 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면서 "공화당내에서도 가이트너 인준을 막아야 한다는 기류는 없다"고 말했다.

그래슬리 의원은 그러나 "가이트너가 됐건 아니면 다른 후보가 됐건 재무장관직은 공석으로 비워둘 수 없는 막중한 자리이며 조속히 인준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는 가이트너의 세금신고 누락을 비롯해 검증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 문제점이 간단치 않지만,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현상을 비롯한 경제위기의 와중에 가이트너의 인준을 거부할 경우 시장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순전히 실수였으며, 인준을 받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가이트너에 대한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었다.

그러나 상원 금융위에 제출된 자료들에 따르면 가이트너는 2001∼2004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근무할 당시 세금신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통보하는 서류를 읽고 이에 서명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3만4천달러의 세금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미국 체류기간이 끝나 불법체류 신분이 된 사람을 가정부로 고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불법체류자의 고용 문제는 과거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조 베어드 법무장관 내정자와 조지 부시 행정부 때 린다 차베스 노동장관 내정자 등이 인준청문회를 앞두고 `낙마'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가이트너의 경우 인준이 이뤄질 경우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될 수도 있다.

특히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인 가이트너가 7천억달러 규모의 금융구제 법안과 이 자금의 집행 및 감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인물이지만 이미 집행된 3천500억달러의 사후감독이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도 이번 청문회의 핫이슈 가운데 하나다.

재무장관은 국세청(IRS)을 직접 관장하는 직위이며, 미국민에게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세금을 재무장관 내정자가 무려 3만4천달러나 누락했다는 점은 간단히 볼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그러나 실업자가 400만명을 웃돌고 경기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가운데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당일 다우지수 8,000선이 붕괴되는 불안한 경제현실을 감안할 때 재무장관 인준을 무한정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인물을 찾아야 할 경우 재무장관직을 최소 몇주 이상 공석으로 둬야 하기 때문이다.

가이트너 개인에게 흠결은 드러났지만 금융시스템의 감독과 개혁에 이만한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무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다소 진통은 따르더라도 가이트너의 인준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아직은 우세한 편이다.

상원 금융위는 22일 가이트너에 대한 인준 표결을 실시한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