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7도의 매서운 한파였다. 칼바람이 목덜미로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새벽 4시 버지니아주 비엔나에서 워싱턴 시내로 가는 첫 전철은 만원이었다. 평소 20여분이면 충분했던 게 한 시간이나 걸렸다. 출구는 미어터졌고 일대 혼란이 덮쳤다. 누군가 "오~바마,오~바마"를 외쳐댔다. 이번엔 뒤쪽에서 "Yes,we can(우린 할 수 있어)"이라고 받자 어느새 합창으로 울렸다. 질서가 찾아왔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취임식 때까지 추위도 피할 겸 맥도날드 24시간점을 찾았다. 가게는 두툼한 코트,귀마개로 중무장한 취임식 축하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20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첫 흑인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축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취임식 공식행사의 출발선인 오전 11시30분.군중들은 구름처럼 모여든 인파를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리번거렸다. 동 · 서 길이 3㎞의 내셔널몰 공원을 가득 메운 인파는 200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계됐다. 60만 한국 장병들의 세 배가 모였다. 미셸 여사와 두 딸 사샤와 말리아가 등장하고,주인공인 오바마가 맨 마지막으로 취임연단에 올랐다. 물결치는 오바마 연호를 오바마가 중단시켰다.
[워싱턴 특파원의 오바마 취임식 참관기] "미국의 재건이 시작됐다"…전세계에 메아리친 'Yes, We can'
낮 12시5분.오바마는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사용한 성경에 한 손을 얹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취임선서를 마치자 참았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앞줄에 앉은 흑인 서너 명이 "We did it(우리가 해냈다)"을 연발했다. 당선인 신분에서 대통령 신분으로 바뀐 오바마는 내셔널몰 서쪽 끝 링컨기념관을 한 차례 응시한 뒤 취임연설에 들어갔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명연설과는 달리 은유보다 직설적인 표현이 많았다.

"미국은 전쟁(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 중에 있으며 경제는 주택 위기,실직,공장 폐쇄 등으로 심각하게 망가졌다"는 게 그의 일성이었다. 오바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참석한 사실도 잊은 양 "일부의 무책임과 탐욕이 화를 불렀다"고 직사포를 날렸다. "소모적인 정쟁을 벌이는 정치권,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정부,감독 소홀로 통제력을 잃은 시장"이라며 세 가지 '실패'를 지적했다.

오바마는 대안도 내놓았다. "경제 상황은 과감하고 신속한 행동이 요구된다"면서 "일자리를 만들고,태양과 바람,토지에 마구를 채워(그린에너지 개발) 신성장 동력을 장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도 이 같은 목표에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공동의 목표에 상상력과 용기를 덧붙일 줄 몰라서 그런다"고 비판했다.

외교와 안보 분야 정책 방향은 '주먹론'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에 손바닥을 보여주면 적국과도 대화를 하겠으나 테러,핵 확산으로 미국을 향해 주먹을 쥔 상대는 폐퇴시키겠다고 엄중한 경고장을 날렸다. 미국의 힘은 신중하게 사용할 때 커지고,안보는 대의명분이 올바를 때 보장된다고 원칙도 제시했다. 일방적인 군사력에 의존한 부시 행정부의 정책과 결별을 선언했다.

오바마는 이날 취임사에서 '국가(Nation)'라는 단어를 15번이나 사용했다. '미국(America)'은 9번,'국민(People)'과 '일(Work)'도 각 8차례 언급했다. "미국민들이여 오늘부터 떨치고 일어나라.미국의 재건이 시작됐다. 우리는 할 수 있다,그리고 할 것이다(We can do,We will do)"고 희망을 가리켰다. 200만 인파는 "Yes,we can"이라며 수차례 함성으로 화답했다. 한파를 뚫고 취임식에 참석한 그들은 자신들의 희망을 대통령 오바마에게서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