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20일 워싱턴D.C.에는 `동장군'이 기세등등했지만, 역사적인 첫 흑인대통령을 맞이하려는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이날 워싱턴의 아침 기온은 영하 7도, 체감기온은 영하 13도에 달할 정도로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살속을 파고 들었다.

그러나 행사장인 국회의사당 주변 야외공원인 내셔널 몰을 가득 메운 200만명 이상이 뿜어내는 열기는 추위를 녹여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역사적인 취임식을 보기 위해 동트기 전부터 행사장 주변에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두툼한 외투, 털모자, 털장갑 등으로 `중무장'한 모습이었다.

취임식 전까지 4-5시간을 추위에 떨며 야외에서 대기해야 하는데다 취임식 이후 신임 오바마 대통령의 페레이드를 보려면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에서 남편의 만류를 뿌리치고 직접 차를 몰고 왔다는 멀린다 존스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2기 취임식 때도 무척 추웠는데 오늘도 제법 춥다"며 "하지만 옷을 단단히 껴입고 왔기 때문에 견딜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오바마 당선인이 국회의사당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정오쯤에는 기온이 0도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게 기상당국의 예보다.

미국의 대통령 취임식은 지난 1937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종전까지 3월이던 취임식을 1월 20일로 앞당기면서 혹한 속에 치러진 경우가 많았다.

지난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2기 취임식은 수은주가 영하 14도까지 떨어지고,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달했다.

대통령 취임일 역사상 가장 추웠던 이날 애초 예정됐던 옥외 취임행사는 실내로 옮겨져 치러져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4년전인 1981년 레이건 1기 취임식은 영상 12로 1월 취임식으로는 가장 따뜻한 날씨를 기록, 레이건의 2차례 취임식은 냉온탕을 오간 셈이다.

100년전인 1909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 취임식도 당시 3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5㎝의 기록적인 눈이 내리는 바람에 옥외행사가 옥내행사로 대체됐다.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은 1841년 3월 취임식 때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한모와 코트도 걸치지 않은 채 1시간40분에 걸친 역사상 최장 취임사를 하다가 얻은 폐렴 때문에 결국 1개월 뒤에 사망했다.

또 1853년 3월 영상 1도 정도의 날씨에 거행된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이임 대통령 밀러드 길모어의 부인도 감기에 걸린 뒤 한 달 만에 사망했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