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패권주의로 국제사회 갈등ㆍ대립 초래
'악의축' 북한과 6자회담 '절반의 성공' 거둬


지난 8년간 '세계의 대통령'으로 군림해왔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역사의 일선에서 물러난다.

4년 혹은 8년마다 주무대에서 퇴장하는 미국 대통령들은 그들의 공과를 놓고 많은 논란을 남겨왔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만큼 평가가 한쪽으로 기우는 대통령도 많지 않을 것이다.

CNN은 작년 11월 초 퇴임을 100여일 앞둔 부시 대통령에 대해 보도하면서 미 역사학자들의 말을 빌려 `무능하고 불운했던 대통령'이라고 '주홍글씨'를 달았다.

이 같은 신랄한 평가는 내치(內治)의 실패도 이유지만 대외정책에 더 큰 원인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엄청난 역사의 책임을 면키 어려운 상황인데 이런 주된 이유가 이라크전쟁 등 잘못된 대외정책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8년간 강력한 보수주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 등을 대외정책의 기치로 내세워 대화보다 테러를 앞세우는 극단주의와 독재에 맞서 세계 질서를 바로잡고 국제사회에 지도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그러나 `동맹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 선과 악의 대결구도,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하드파워를 바탕으로 한 `일방적 패권주의'는 많은 세계인들에게 희망과 화합보다,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이라는 상처와 아픔만 남겨놓았다.

부시 대통령의 모든 불행과 불운은 9.11 테러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취임한 지 9개월도 안돼 엄청난 테러사태를 겪게된 뒤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은 180도 달라졌다.

온정적 보수주의는 설 자리를 잃고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득세했으며 외교정책에선 힘을 바탕으로 한 패권주의가 만연해지고 `동맹이 아니면 적'이라는 일방적, 강압적 대외관계가 자리를 잡았던 것.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9.11테러의 주범인 알카에다 및 이들을 비호하는 탈레반 축출에 나선 데 이어 대량살상무기(WMD) 폐기,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명분 아래 이라크 침공도 주저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독재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몰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오판과 군사력을 앞세운 인위적 정권교체라는 잘못된 정책은 이슬람권의 저항운동에 불을 질러 오히려 테러를 확산시키고 이라크를 종파간 반목과 갈등의 골짜기로 밀어넣었다.

그 결과 부시 대통령은 6년동안 1조달러에 가까운 전쟁비용을 퍼부은 것은 물론 4천200명이 넘는 장병들의 목숨을 받치고도 여전히 이라크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간에서도 8년동안 미군 전사자만 600명을 훌쩍 넘어서는 등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미국은 더욱 거세진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저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정책의 실패는 부시 대통령이 작년 12월 이라크를 고별 방문,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이라크 기자로부터 돌발적인 `신발테러'를 당한 데서 잘 대변된다.

미국의 이런 대외정책은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손상시킨 것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반미감정을 증대시키는 등 세계의 지도자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며 미국 외교의 위기를 초래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소(CSIS)는 2007년말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앞세운 힘 위주의 국제전략을 행사, 국가이미지와 영향력이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강압적 하드 파워보다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미국 대선에서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고 국제적인 이미지를 쇄신하는 방안이 주요이슈로 부상하기도 했다.

그나마 대외정책에서 부시 대통령이 내세울 수 있는 업적으로 꼽히는 것은 북핵 6자회담이다.

미 백악관은 최근 `미국인들이 모를 수 있는 부시 행정부의 100대 기록'이라는 자료를 통해 6자회담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 폐기 약속을 받아낸 것을 대표적 외교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북한이 작년 12월 핵검증의정서 합의를 거부하며 6자회담을 공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6자회담은 북한의 플루토늄 추가 생산을 막는데 그친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시작부터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1년 1기 때 전임인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배제한 이른바 `ABC(Anything But Clinton) 노선'을 표방, 북한의 우라늄농축핵프로그램을 이유로 북.미 제네바 합의를 무력화시키는 등 `실책'을 거듭 했다.

또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레짐 체인지' 등을 거론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자극, 북한의 반발은 사는 것은 물론 대내외적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 북한과 대화를 거부했던 부시 대통령이 2003년 북핵 6자회담 시작을 계기로 북한과 협상에 나선 데 이어 `방코델타아시아 북한계좌 동결',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실험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유연한 협상태도를 견지했다.

그 덕분에 부시 대통령은 영변핵시설 불능화, 북핵신고서 제출 등 가시적 성과를 내며 북한의 핵위협을 지금까지 안전하게 관리해올 수 있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