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ㆍ건강보험 미소지자ㆍ재정적자 급증
금융위기로 미 경제 몰락…'소유주사회'의 귀결


"오늘 부시 대통령의 고별 기자회견에서는 신발짝이 날아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진보성향의 미 MSmbc 방송 심야방송 앵커가 12일(미국 시간) 열렸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고별회견을 조롱하듯 내뱉은 말이다.

지난 2000년 대선에서 유권자 총 득표에서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에게 뒤지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앞서 천신만고 끝에 대권을 거머줬던 부시 대통령은 8년여가 지난 지금 이렇듯 씁쓸한 퇴장을 앞두고 있다.

`부시 때리기'가 끝나면 과연 미국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로 부시는 인기가 바닥인 상태에서 고향인 텍사스로 낙향하게 된다.

부시 집권 8년의 성적표는 숫자가 웅변한다.

지지율은 8년전 50%대에서 31%로 주저앉아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에는 지지율이 반토막 수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그의 집권기간 빈곤층은 640만명에서 760만명으로 늘어났고, 건강보험 혜택을 못보는 사람은 3천900만명에서 4천500만명으로 불어났다.

재정은 2천3백억달러 흑자에서 1조2천억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부시는 집권 1기만 하더라도 상당히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순항했다.

특히 2001년 발생한 9.11테러는 부시의 결단력과 위기관리능력을 돋보이게 한 계기로 작용, 90%를 웃도는 절정의 지지율을 안겨줬다.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감행한 결정은 9.11 이후 달아오른 미국인들의 `애국심' 덕분으로 반발은 커녕 오히려 찬사와 격려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테러리즘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 전체적으로 부시의 지지율 하락과 국론분열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취임 당시 `온정적 보수주의자'를 표방하며 통합자가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통합의 스포트라이트는 지금 온통 버락 오바마 당선인에게 쏠려있고 자신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이라크전 찬성자와 반대자, 감세론자와 증세론자 등으로 국론을 갈라치기한 분열주의자의 멍에를 쓰고 있다.

부시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수준으로 형편없이 주저앉았지만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 부시 지지율이 70% 정도를 나타날 정도인 것만 봐도 통합조정자의 역할에 실패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파당적 보스 이미지가 강한 셈이다.

지난 2005년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연방정부의 늑장대응은 부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결정타였다.

피해지역인 뉴올리언스에 흑인인구가 많았다는 사실은 "백인이 피해를 봤다면 그렇게 했겠느냐"는 인종차별 논란으로까지 비화됐다.

특히 부시는 텍사스에서 휴가를 마치고 워싱턴D.C.로 복귀하는 비행기 안에서 피해현장을 내려다보는 `무성의'를 보였다는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아야 했다.

임기 말에 닥쳐온 경제의 몰락은 부시에게는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막판까지 노력했던 부시는 경제쓰나미 한방에 그나마 남아있던 인기마저 모두 까먹었다.

부시는 고별기자회견에서 "52개월 연속 일자리가 늘어났고, 재임기간 경제가 확대됐다"고 강변했지만, 경제위기는 이런 공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부시 재임기간인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경제가 확대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펀더멘털이 부실한 `사상누각'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폄하하고 있다.

저축과 수출주도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 지출이 경제확대를 이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금융위기의 진앙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이어지는 부실을 키웠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부시가 주창했던 `소유주 사회(ownership society)'가 불러온 예고된 사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자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전통적 이념과 달리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한 점을 놓고도 비판적인 시각이 적잖이 제기된다.

또한 부시에게 지금의 경제위기 책임을 모두 떠넘길 수는 없지만, 이런 위기를 예상하고 예방하지 못한 점은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지난해 10월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90%가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 응답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나마 부시의 업적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은 교육분야에서 `낙제학생방지법'을 제정하고, 아프리카의 말라리아와 에이즈 퇴치에 노력한 점이 꼽힌다.

미국 방문객에 대한 지문감식 등 지나친 자국 편의주의 정책을 양산했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지만, 국토안보부를 신설해 9.11테러 이후 미 본토에 대한 외부의 테러공격을 막아낸 것도 성공한 정책이라는 평가다.

비록 의회의 비준동의를 얻는데는 끝내 실패했으나 한국, 파나마, 콜롬비아와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하고, 보호무역주의 보다는 공정무역을 수호하려는데 목소리를 낸 점은 부시가 남긴 긍정적인 유산으로 여겨진다.

엄청난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긍정적 태도를 높이 사는 의견도 있다.

그가 고별회견에서 CNN방송 여기자를 향해 "수전이 맞죠...그동안 수잰 수잰했는데 미안해요, 난 조지에요"라고 농담을 해 좌중을 웃긴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부시는 "역사가 결국 나를 판단할 것"이라며 현재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56년전 해리 투르먼 전 대통령이 퇴임할 때는 인기가 바닥이었지만, 지금은 역경 속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점을 상기시키기까지 하고 있다.

그는 "미국민 가운데는 나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런 결정의 상당부분은 숙고 끝에 내려진 것이며, 그런 결정를 내리는데 있어서 단 한가지 생각은 무엇이 미국에 최선인가라는 점이었다"고 강조했다.

국가를 위하지 않는 대통령은 동서고금을 통해 없겠지만, 대통령이 내린 정책 결정이 국가를 위해 옳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별개의 문제라는게 백악관을 떠나는 부시에게 딱 들어맞는 비유가 될 것이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