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춘제가 두려운 中 당국
한 손으로는 입을 막고,또 다른 손으로는 사탕을 쥐어주는 중국 정부의 행태는 올해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10년 전인 1999년 중국엔 연행과 검거의 바람이 불었다.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이 파룬궁을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규정하면서부터다. 1992년 리훙쯔라는 사람이 창시한 파룬궁은 기공수련법을 연마하는 집단이다. 파룬궁이 이적집단이 된 데는 정치적 배경이 깔려있다는 게 일반적인 추론이다. 경제성장으로 벌어진 빈부의 격차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파룬궁에 몰려든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급기야 파룬궁 회원 수가 공산당원 수를 넘어서자 당국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보고 이를 강제로 해산시켰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1989년 6월4일은 텐안먼 광장에서 민주화 요구를 하던 대학생들이 탱크로 제압당한 날이다. 석사학위를 가지고도 가정부 일을 할 정도로 대졸 실업자가 양산되는 요즘 중국에선 대학생들을 잠재적 사회불만 세력으로 분류해도 무방할 듯하다. 원자바오 총리가 작년 말 갑자기 베이징의 한 대학을 방문,도서관에서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원 총리는 당 중앙의 최대 고민이 대학생들의 일자리 마련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기도 했다.
농민공과 대학생에 중국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중국 역사에서 민란이 큰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 멀리 진나라의 진승,오광의 난부터 한나라의 패망을 불러온 황건적의 난,당나라를 무력화시킨 황소의 난,청나라의 노쇠화를 촉진한 태평천국의 난 등 왕조 교체기마다 민란이 발생했다.
중국 전역에서 최근 집단시위가 빈발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심각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움직임은 없다. 매년 발생하는 10만여건의 집단시위는 대부분 생계형 시위로,정치적 구호는 등장하지 않는다. 정권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부패한 관리에 대한 저항 수준에 머문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택시 운전사들이 집단시위를 벌이면 그 지역의 최고책임자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푸는 모습도 보인다. 실직자가 늘어나지 않도록 기업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인 수사는 중단하라는 명령도 내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정치적 개혁의 요구가 커질 것이라는 데 있다. 파룬궁 불법화 10년과 톈안먼 사태 20년을 맞은 2009년.경제위기 속에서 사회적 소외세력이 양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중국 지도부가 정치개혁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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