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아시아 증시에서는 외국인의 향방이 최대 화두다. 특히 우리처럼 외국인에게 의존하는 '윔블던 현상'이 높은 나라에서는 외국인에 의해 주가와 환율의 움직임이 좌우되는 정도가 심하다.

윔블던 현상이란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데서 유래된 용어로,한국 증시에서는 주인인 한국인보다 외국인에 의해 주가 움직임이 주도되는 것을 말한다. 이 현상은 외국인 비중이 높거나 외자선호 정책과 외국인 혹은 외국계 금융사 경험 · 인력을 우대하는 경영이 확산될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윔블던 현상이 심해지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비중이 높아지면 투자대상국의 △금융서비스 개선 △금융제도 및 감독기능의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의 순기능도 많다. 영국의 경우 1986년 금융빅뱅을 추진할 당시 초기 단계에서 역기능이 우려됐으나 갈수록 순기능이 나타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다시 탄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는 어떤가. 한마디로 경제발전단계에 비해 윔블던 현상이 너무 심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큰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외국인 자본이 우리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상생적인 투자가 되지 못하고 국부유출로 직결되는 것이 문제다. 국내 시중은행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을 상대로 번 돈의 70% 이상이 여전히 배당 등을 통해 외국인들 손에 넘어가고 있다.

경제정책도 무력화된다. 외국 자본이 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정부의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외국 자본이 확대된 만큼 우리의 경제주권과 투자주권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윔블던 효과가 심한 국가를 '제2의 IMF 경제신탁 통치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글로벌 펀드들이 벌처펀드형 투자,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가 높아짐에 따라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가 심해진다. 최근처럼 국부펀드가 활발해지는 시대에서는 국가 기간산업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현 정부가 G20(주요 20개국) 의장국으로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태동할 국제금융질서에서 중심국이 되기 위해 시행해야 할 각종 금융허브 과제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어렵다. 또 외국인에 대해 적대적 감정이 있는 국가에 속한 기업과 금융사들이 추진하는 글로벌 과제도 역으로 투자대상국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개인 투자자들의 중장기 투자문화를 정착시키는 일도 더욱 어렵게 된다. 오히려 외국인 향방과 재료에 따라 주가와 투자성과가 좌우되는 '천수답 장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1년 전 월가 특파원 시절에 만났던 메릴린치의 아시아담당 책임자는 최근 전화통화에서 "한국 증시에서 윔블던 현상이 줄어들지 않으면 한국인 사이에 워런 버핏이 나오기 힘들고 돈도 많이 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 시점에서 윔블던 현상을 줄이면서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더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외자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외환보유액에 문제가 생기자 무조건 외자를 선호하는 정책이 재연되고 있으나 오히려 우리 경제와 공생적인 투자가 될 수 있느냐 여부를 우선적으로 따져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 외자유입 정도에 비례해 국내 기관투자가와 국내 자본 육성,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등에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증적인 사모펀드 조성보다 우리 제도 곳곳에 만연돼 있는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 간 역차별 요소를 해소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이제부터 기관과 개인투자자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참고지표를 만들어 투자해야 한다. 외국인 움직임 이외에 투자시 참고할 지표가 많아질수록 증시가 중층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투자주권도 지킬 수 있다. 이 밖에 21세기처럼 글로벌화가 급진전되는 시대에서는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될 수 있다는 자세를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