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급감 상황서 조업중단 명분 제공

유럽 가스 대란으로 산업계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이번 가스공급 중단이 일부 기업에는 호기(好期)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때 고통을 더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생산중단의 시기가 장기화하지만 않는다면 그동안 쌓였던 재고를 털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AP 통신은 경기위기의 여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나라의 기업 중 상당수는 최근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인해 판매량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가스부족에 따른 생산 중단을 재고 상품 처분의 기회로 삼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이들 기업은 또 경기침체에 따른 구조조정을 앞둔 상황에서 가스 대란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으로, 조업 중단의 또 다른 핑곗거리를 찾아낸 셈이 됐다,
헝가리 콩코드 증권의 이코노미스트인 슈버 야노시는 "일부 기업들은 연말연시에 긴 휴가를 보냈는데 이번 가스 위기는 다시 공장 문을 닫을 수 있는 명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가스 공급이 설날 휴일 직후에 끊긴 것은 생산중단이 손실로 직결되는 기업들에도 시기적으로는 매우 다행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GKI의 카탈린 팔은 "일부 기업은 연초 휴가 이후 아직 조업을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며, 생산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에 이런 대란이 일어났다면 피해는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이번 가스 대란이 금융위기로 어려워진 동유럽 각국 기업들을 더욱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슬로바키아에서는 1천개의 기업이 정부로부터 가스공급 중단 요청을 받았으며, 이른 시일 내에 공급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거의 모든 기업의 생산라인 가동이 전면 중단될 수도 있다.

불가리아 정부는 152개에 달하는 기업들의 생산중단으로 말미암은 손실액은 430만 유로에 달한다고 밝혔고, 헝가리도 한국타이어, 스즈키, 브리지스톤 등 외국기업들이 일시적으로나마 생산을 중단한 것이 산업계 전반에 걸쳐 위기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편입된 헝가리는 작년 11월 산업 생산이 10.1%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 대기업들의 조업 중단이 장기화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펀드운용 전문가인 두로넬리 페테르는 "1일 생산 손실은 월간 생산량을 4∼5%나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 권혁창 특파원 fai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