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그루지야와 전쟁을 시작한 지 8일로 5개월이 흐른 가운데 러시아가 또다시 옛 소비에트 연방 소속 국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와 `소리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엔 총이 아닌 가스다.

그러나 크렘린이 그때와는 달리 정치적 영향력보다는 `돈'을 더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9일 AP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구소련 붕괴 이후 실추된 영향력 회복을 위해 석유와 가스를 `비장의 카드'로 사용해 왔다.

러시아가 어떤 이유에서든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면 전체 가스 수요의 4분의 1을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는 유럽은 에너지 대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찾아든 금융위기와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는 경제적 자신감을 많이 상실했다.

따라서 적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지금 상황에서 크렘린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 행사보다는 시장 가격으로 가스 가격을 올리는데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드미트리 페츠코프 총리실 대변인은 "우리는 지금 금융위기를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살리려고 우리 국민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로 러시아의 지난해 11월 한 달 산업생산이 10.8% 하락했고 실업자는 한 달 사이 40만 명이 느는가 하면 한때 6천억 달러에 달하던 외화보유액도 2천억 달러 가까이 소진됐다.

또 한때 배럴당 140달러에 달하던 유가가 50달러 이하까지 떨어지면서 국가 재정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몇몇 분석가들은 크렘린은 여전히 돈 보다는 구소련 국가들에 대한 지배력 강화에 관심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미국 페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안데르스 애슐른트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의 주 목적은 우크라이나 정치를 불안정 상황으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각에서는 두 나라 사이에 오래된 정치적 갈등이 이번 가스 분쟁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루지야처럼 우크라이나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 러시아를 자극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또 러시아 흑해함대의 자국 영토 내 세바스토폴항 임대 연장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지난 전쟁에서 그루지야에 군사적 지원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가스 채무를 갚지 않고 올해분 가스 값 인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1일 우크라이나 국내로 가는 가스공급로를 차단했고 5일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산 가스를 유용하고 있다면서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전날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아직 가스 공급 재개 소식은 없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