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좌파 운동가들이 성조기를 들고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언제나 체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미국의 좌파 진영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애국이라는 '낯선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6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풍경을 소개하면서 진보진영의 변화를 전했다.

지난해 11월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날 밤, 캘리포니아대 캠퍼스에는 수백 명이 모여 도심의 피플스 파크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는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될 때마다 좌파 운동가들이 벌이는 일종의 관례.
하지만 이번 행진에서는 체제에 도전한다는 '전통적인' 의미는 사그라지고 새로운 정권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심지어 한 남성은 성조기를 펼쳐들었으며 사람들은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버클리에서 변호사 보조원으로 당시 행진을 지켜본 헤일리 페이건(24)은 "사람들이 우리 세대에서 마침내 애국심을 회복했다고 느꼈다"며 "그것(애국심)에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좌파 진영이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 후 정치 현실에 어느 정도 만족하기 시작했으며,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1960년대 버클리에서 학생운동을 기록한 책을 쓴 조 프리먼은 "좌익에서는 거의 반사적이고 체계적으로 미국 정부에 반대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역대 대통령은 이를 매우 쉽게 만들어줬다"면서 "정부에서 하는 모든 일을 의심의 눈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이 오바마 시대에 와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에서는 미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대규모 행사를 사상 처음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이곳은 1964년 자유 옹호와 터부 반대를 주장한 학생운동인 '자유발언 운동'이 시작된 곳.
대학의 로버트 버제노 총장은 "이는 애국적인 축제가 될 것"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첫 흑인 대통령을 뽑은 나라의 일원임을 행복해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대학의 역사학자인 레온 리트웩은 "자유발언 운동 지도자들은 가식을 거부하고 지도자의 정체를 벗겨 내며 제도와 정부, 전쟁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을 애국으로 여겼다"며 미국 정부나 대통령의 대내외 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예전이 학생운동과 최근의 변화를 대비했다.

특히 버클리에서는 2001년 9.11테러 후 반전 시위대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소방차에서 성조기를 제거할 정도로 '반골' 성향이 강했다.

대선 당일 버클리뿐 아니라 보스턴 하버드 스퀘어에서 국가가 울려 퍼졌고 뉴욕의 유니언스퀘어에서는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야"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미 드루대학의 역사학자인 제레미 바런은 "좌파의 신(新)애국주의는 헌법이나 공정한 절차, 권력분립, 기본권 등이 박탈당하거나 위협받은 뒤 그의 중요성을 깨달은 결과로 풀이할 수도 있다"며 "대선 당일 밤은 '우리(좌파)도 미국을 노래한다'는 카타르시스의 장이었다"고 평했다.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