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슬로바키아 비상사태 선포..불가리아 최대 피해
8일 양국 협상 타결 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 분쟁으로 촉발된 유럽의 가스 부족 사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공급하는 가스 공급이 전면 중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영 에너지업체 나프토가즈의 발렌틴 쳄리안스키 대변인은 러시아가 7일 오전 7시 44분(현지시각)께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공급을 모두 중단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 중단을 단행한 지 일주일 만에 유럽행(行) 가스 공급이 모두 중단된 셈이다.

AP, AFP, 이타르 타스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이번 가스 분쟁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포함해 현재 17개국에서 가스 공급이 완전히 끊기거나 심각한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다.

불가리아, 그리스, 마케도니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터키, 보스니아, 체코는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전면 중단된 상태며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이탈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는 공급량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2006년 1월 가스 대란의 악몽이 유럽 전역에서 재연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2006년 1월 3일간의 가스 중단 당시보다 피해 국가가 더 많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또 중동부 유럽지역을 강타한 한파와 겹치면서 난방 수요가 급증, 가스난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스 공급을 러시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불가리아가 이번 분쟁의 가장 큰 피해국이 되고 있다.

불가리아는 우크라이나를 거쳐 들어오는 가스공급이 끊기면서 흑해 연안의 바르나에서 1만2천 명, 북동부 라즈그라드에서 3천800명이 밤새 추위에 떨었다.

불가리아 당국은 이 지역의 난방 연료를 가스 대신 대체 연료로 바꾸는 과정에 시간이 걸려 일시적으로 난방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산업계에 대한 가스 공급을 제한하면서 비료생산 업체 등 공장들의 조업 중단 사태도 속출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가스 공급에 의존하는 금속, 화학, 제약업계도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불가리아 고용주협회는 이번 사태로 인한 업계 피해액은 5억 레바(4천5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며,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타격을 받은 산업계가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호소했다.

불가리아의 하루 가스 소비량은 1천200만㎥로, 현재 이 가운데 430만㎥를 비축분에서 끌어쓰고 있다.

현지 가스관 운영업체인 불가르가즈는 비축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상황이 더욱 심각해 질 수 있음을 우려하는 한편 게오르기 파르바노프 대통령은 쓰지 않고 있던 원자로 재가동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헝가리도 이날 다량의 가스를 소비하는 기업들에 대한 제2차 가스 공급 제한을 발표했다.

전날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 공급이 전면 중단된 헝가리는 이날 아침 8시를 기해 시간당 가스 소비량이 500∼2천500㎥인 기업 및 농업 시설에 대해 가스 공급을 제한했다.

헝가리는 이미 전날 밤 소비량이 2천500㎥ 이상인 기업들에 대한 1차 가스공급 제한을 시행한 바 있다.

각 발전소에 대체 연료 사용을 지시한 헝가리 당국은 두 차례에 걸친 공급 제한으로 이날 전체 가스 소비량은 6천400만㎥로 전날보다 400㎥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가스 공급의 40%가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크로아티아는 산업계에 대한 가스 공급을 일시 줄이고 모든 시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당부하는가 하면 이틀째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이 중단된 보스니아도 사라예보 등 많은 도시가 가스 공급 제한을 시행하고 있다.

자국 가스 수요량의 9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세르비아는 전날 오후부터 가스 공급이 전면 중단된 상태지만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수만 명의 주민이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다고 dpa 통신이 전했다.

대부분 도시에 가스 대신 석유 난방이 이뤄지는 가운데 세르비아 정부는 야간 송전을 일시 차단하는 조치도 고려 중이다.

터키는 이란으로부터 받는 가스 공급량을 늘리려고 이란 정부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으로 러시아로부터 전체 가스의 40%를 수입하는 독일 또한 비상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독일 경제부는 46개 지하 가스 저장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40일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프랑스 내 가스 공급의 97%를 담당하는 GDF 수에즈는 전날 러시아로부터 들어오는 가스 공급량이 70% 이상 줄었다면서 그러나 아직 소비자들에게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의 15% 정도를 의존하는 프랑스는 네덜란드, 노르웨이, 알제리, 이집트 등 다른 공급국으로부터 가스 부족분을 충당할 방침이다.

전날 가정용 가스 확보를 위해 산업 부문 공급을 제한한 폴란드는 벨라루스를 통한 가스 수입량을 늘리기로 했다.

그런가 하면 이날 정부 대책회의를 연 루마니아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정부 대표는 "상황이 심각하지만, 통제 불능 상황은 아니다.

"라면서 "최대 80일분의 가스를 비축하고 있다.

"라고 말했다.

슬로바키아 당국도 전날 밤사이 가스 공급량이 70%나 떨어졌다면서 조만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가스 공급 부족사태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되자 그동안 사태해결에 소극적이던 EU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EU 집행위원회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상황별 비상조치를 마련했다고 이타르 타스 통신이 외교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율리아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총리와 직접 통화해 가스공급 정상화를 촉구했다.

바로수 위원장은 EU의 에너지 안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협상에 '볼모'가 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EU의 동반자로서 양국의 위신이 실추될 위기에 놓였음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헝가리 총리와 불가리아 총리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도부, 그리고 EU 순회 의장국인 체코 총리에게 서한 또는 전화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항의와 함께 조속한 정상화를 촉구했다.

반(反) 러시아 성향의 레흐 카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EU 측이 사태 해결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알렉산드르 메드베데프 가즈프롬 부회장은 전날 독일 방문에서 "유럽이 우크라이나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질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산 가스 수출 루트 4개 중 3개를 차단했다.

우리는 이를 `가스 도둑'이란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라고 우크라이나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지난 5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가스를 유용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가스 공급량을 매일 약 15%씩 줄이라고 가즈프롬에 명령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8일 모스크바에서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지만 협상 타결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부다페스트.브뤼셀.모스크바연합뉴스) 권혁창.김영묵.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