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언어 연수 중이던 한국인 여대생이 인화성 물질을 이용한 화상(火傷) 테러를 당하면서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러시아에서 한국인이 인종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기 때문에 한국 교민과 유학생들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05년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0대 한국인 유학생 2명이 칼에 찔렸고, 같은 해 3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 교포가 러시아인 2명에게 머리를 가격당하고 돈 가방을 빼앗겼다.

2007년 지난 2월에는 한국인 유학생 1명이 러시아 청년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해 치료를 받던 중 후유증 때문에 한 달 뒤 숨졌고, 2007년 10월에는 모스크바에서 연수 중이던 한국 모 정부부처 직원이 자신의 집 근처에서 괴한으로부터 얼굴 등을 폭행당해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또다시 그것도 과거에 없던 잔인한 수법의 테러가 발생하자 모스크바 교민 사회가 많이 놀라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스킨헤드'들이 4월20일 히틀러 생일을 전후해 아시아·아프리카 출신 외국인들을 상대로 종종 공격을 가해 왔지만, 최근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외국인 피습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와 함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욕구불만이 팽배해졌고 국수주의자와 네오나치주의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 현재 러시아 젊은이의 약 15%는 극우파에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한해 러시아 내에서 120여 명이 각종 인종범죄로 사망했으며 그 중 40여 명이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자들이다.

특히 인권단체들은 이민족들에 대한 폭력 행위가 최근 빈발할 것은 지난해 9월 러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금융위기로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이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중앙아시아인들을 납치해 이들의 장기를 중국 등에 팔아넘긴다는 소문까지 공공연히 퍼지고 있다.

그동안 이런 인종 차별적 범죄를 단순히 '훌리건의 행동'으로 치부하면서 사건 수사에 미온적이던 러시아 당국도 최근 들어 외국인 혐오 범죄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14세 미만 청소년들의 야간 통행을 법으로 규제하는가 하면 경찰 외에 연방보안국(FSB)까지 외국인 혐오 범죄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혐오 범죄 피고인에 대해 형량을 낮게 적용하는가 하면 폭행범을 형사 기소해 재판까지 받게 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은 소요되는 것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모스크바에 유학 중인 김모씨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서 그렇지 주변에서 외국인 구타사건이 빈번하다.

"라면서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는 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식당업을 하는 교포 김모씨는 "집앞을 가는데도 마음 편히 갈 수가 없다.

"면서 "러시아의 치안이 불안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경기가 어려워진 요즘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라고 말했다.

주러 한국대사관은 한국 교민과 유학생들이 이들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신변 안전에 주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

주러 한국대사관 신성원 총영사는 "될 수 있으면 야간외출을 삼가고, 지하철역이나 공원 등 대중 장소에서도 방심하면 안 된다.

"고 지적하고 "만일 그런 불미스런 일을 당한다면 바로 대사관에 연락하면 되고 경찰 수사 등에 불리하지 않도록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