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강도 높은 조치로 신용 경색은 다소 해소됐지만 금융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 금융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고 압류 증가로 주택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 금융사와 가계의 부실이 증가하게 된다.

미국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글렌 허버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51)은 하루 속히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주택시장을 안정시키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압류를 막기 위해 채무를 재조정해 주는 등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논의되고 있다. 어떤 정책이 가장 효율적인가.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해선 전체 주택시장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추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30년 만기 장기 모기지의 고정 금리가 낮아지면 잠재 수요자들이 주택 매수를 적극 고려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 이미 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 중 이자 부담을 덜기 위해 새로 모기지 계약을 맺는 리파이낸싱이 활발해질 수 있다. 모기지 금리가 연 4.5% 수준으로 떨어지면 대략 3400만가구가 리파이낸싱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리파이낸싱을 통해 매달 상환하는 원리금 부담이 줄면 그만큼 소비가 활성화될 것이다. "

▶주택 수요를 되살릴 정도로 모기지 금리를 낮추려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가.

"여러 방법이 있다. FRB가 재무부가 발행한 장기 국채를 사 주고,모기지 대출을 담보로 발행한 증권도 매입하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 국책 모기지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사 줄 수도 있다. 연방 정부가 국책 모기지회사의 빚에 대한 보증을 서 준 것도 적절한 조치였다. 집값은 금융사는 물론 소비자의 대차대조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금융사와 가계의 재무 상태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집값 하락을 막지 못하면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5% 초반이고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는 연 2.2% 수준이다. 전통적으로 양 채권 간 적정 스프레드(금리차)는 1.60%포인트였다. 모기지 금리를 추가로 떨어뜨릴 여지가 있다. "

▶모기지 금리가 낮아도 주택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텐데.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집값은 10%가량 더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모기지 금리를 4.5% 이하로 낮추면 잠재 매수자들이 집을 적극적으로 사게 돼 올해 집값은 보합세나 약간의 회복세를 보일 수도 있다.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 등을 감안하더라도 올해 집을 새로 구매하려는 잠재 수요자는 240만가구에 달한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한 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떤 정책에 주력해야 하나.

"정부는 인위적으로 경제를 살리려 하기보다는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힘써야 한다. 금융사에 자본을 투입해 재무 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이 과정에서도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물론 신뢰가 가는 경기 부양책도 시장 참여자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경기 부양책은 앞으로 12개월 동안 국내총생산(GDP)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와 세금 인하 등을 고려해 볼 만하다. "

▶법인세를 적정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세금 문제는 상당히 정치적인 이슈다. 법인세 인하도 장기적으로 경제에 도움을 주는 방안이다. 자산 가격이 떨어질 때 법인세가 높은 것은 결국 투자를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법인세는 기업이 내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 주주 임직원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특히 개방 경제에서 법인세 과다 부담은 자칫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법인세율은 35% 수준이다. 법인세를 27~28% 정도로 낮추면 정부의 세수가 줄지 않는 범위에서 기업 투자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차기 민주당 정부에서 법인세 인하가 이뤄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

▶20일 취임하는 오바마 당선인의 최우선 정책 과제로 무엇을 꼽을 수 있나.

"무엇보다 자신감 회복이 중요하다.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로 미국 국민들은 급속히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 자신감 상실은 경제 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오바마 당선인의 인선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폴 볼커 전 FRB 의장을 국가경제회복위원회(ERAB) 의장에 선임한 것은 경제 주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는 데 기여할 것이다. 볼커는 미 금융시장에서 자신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FRB 의장을 지내면서 인플레이션을 잡았고,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다. "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경제위기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과민 반응을 경계해야 한다.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산업의 혁신을 저해할 정도로 강화된 감독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데 그쳐야 한다. 지나친 간섭은 시장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위기 때일수록 엄청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금융감독 시스템의 변화가 있을 것이고,기업인들은 사업 측면에서 상당한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올해는 변화 측면에서 역사적인 한 해가 될 것이다. "

▶강화된 금융감독시스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금융감독시스템 구조가 영국과 비슷해질 것으로 본다. 또 바젤Ⅱ보다 강화된 자본 요건이 도입될 것이다. 통화 관리와 은행 감독 측면에서 FRB의 역할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FRB는 통화 정책을 통해 유연하고 기민하게 시장에 개입해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재무부처럼 의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다. FRB가 계속 역할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는 영국의 금융감독청(FAS) 같은 조직을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FRB가 중립을 유지할 수 있다. "

▶감독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손보기 위해선 논의할 게 많고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1933년 금융감독 체계를 구축할 때도 1년 안에 모든 것을 마쳤다. 증권관련법,증권거래위원회(SEC) 설립,예금보호 제도 등이 그때 다 도입됐다.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회 위원장,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금융위원장 등은 대단히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바마 당선인이 대선 유세 기간 중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많이 밝히지 않은 만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뤄갈지 지켜봐야 한다. "

▶미국에서 어떻게 매도프 같은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가.

"놀라운 일이다. 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SEC는 제보를 받고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게다가 변동성이 대단히 큰 자본시장에서 어떻게 매년 10%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나. 투자자들이 너무 안이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금융시스템 개혁으로 이런 문제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

▶미국 정부가 리먼 브러더스 파산을 방치한 게 금융 위기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리먼 파산 방치는 잘못한 일이다. 리먼이 망한 직후 금융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재무부와 FRB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마음만 먹었으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안이한 결정을 한 것이다. 위기 때일수록 금융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더욱 필요하다. "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 상품가격 하락과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 등의 영향으로 단기적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질 것이다. 중앙은행의 자산이 불고 돈이 시중으로 빠져나간 탓에 일단 세계 경제가 살아나면 인플레이션이 상당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