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지난 11일 자동차 구제금융 법안을 부결,제너럴 모터스(GM) 등 미국 '빅3'가 파산 위기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되면서 '노조 경제학'이 새삼 국내 산업계의 경영 화두가 되고 있다. 빅3 구제 법안이 미 상원에서 좌초한 핵심 요인은 노조의 임금 삭감 거부였다. 미 공화당 의원들은 정부 지원 대가로 내년 중 빅3 종업원의 임금과 복지 수준을 미국 소재 일본 자동차 업체에서 근무하는 자국 종업원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이를 거부했다.

미국 자동차산업 몰락의 모든 책임이 노조에 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연료 효율이 낮은 대형차에 집착하는 등 경영진의 그릇된 판단과 방만한 경영이 기본적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강성 노조가 몰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직원은 물론 퇴직자와 그 가족에게까지 연금ㆍ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토록 경영진을 몰아붙인 강성 노조의 고비용 구조가 경쟁력을 갉아먹었다는 지적이다.
노조의 경제학 … '노동비용'이 기업 살리고 죽인다


◆파멸 자초한 과잉 혜택 중독증

GM과 도요타자동차 미국 공장에서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각각 29.78달러와 30달러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연금과 의료비를 포함한 1인당 총 노동비용은 GM이 69달러,도요타가 48달러에 달한다. 한마디로 강성 노조로 인한 '과잉 혜택 중독증'이 자승자박이 돼 회사의 몰락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계도 빅3의 몰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빅3 파산 위기는 노조 문제가 기업을 어떻게 죽이고 살리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국내 기업도 빅3의 위기를 교훈 삼아 노사 관계를 보다 생산적이고 협력적인 방향으로 재구축하고 생산성 향상 한도 내에서 임금 인상이 이뤄지는 노사 관행을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노동 비용'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차별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세계 1류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은 모두 무(無)노조 또는 안정된 노사관계를 통해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포스코는 영업이익률이 2006년 20.5%로 일본 신일본제철(14.1%),미국 US스틸(10.7%),중국 바오산강철(13.2%) 등 경쟁 업체보다 월등히 높다. 반면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5.7%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노조가 있지만 서로 협력하는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품질 개선에 나서 노사가 생산성 향상에 전력해 온 기업"이라며 "최근 세계 철강산업이 감산 열풍에 휩싸여 있지만 포스코는 감산 예외 기업이 될 정도로 경쟁력이 높다"고 지적했다.

◆국내 차업계,"남 얘기 아니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산업으로 눈을 돌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과 같은 고(高)비용의 노사 관행이 지속될 경우 빅3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 일본 등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한 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함께 만들고 근로자를 다른 조립 라인에 배치해 생산효율을 극대화한 지 오래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경우 생산량 조정,신차종 양산,시간당 생산 대수 결정 등 핵심 분야가 모두 노사 사전 협의 사항이어서 유연한 생산관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2006년 기준으로 현대차와 기아차의 '조립생산성'(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총 투입 시간)은 각각 31.1시간과 37.5시간이었다. 도요타(22.1시간) 혼다(21.1시간) 등 일본 업체는 물론 GM(22.1시간) 포드(23.2시간)보다도 생산성이 훨씬 떨어진다. 1인당 생산 대수도 현대차와 기아차는 29.6대와 34.9대로 도요타(68.9대)의 42.9%,50.6%에 불과하다.

반면 임금 비중은 경쟁 업체보다 더 높다. 2006년 기준 현대차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1.4%로 도요타(7.25%) 혼다(8.02%)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최근 기아자동차는 카니발 생산라인에서 프라이드를 생산하는 혼류 생산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도 단종된 에쿠스 라인의 남는 인력을 다른 공장에 배치하는 등 노사가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