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로 인한 세계 각국의 시름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위기의 발원지 미국에서는 여전히 암울한 경제지표들이 발표되고 있고 국가 간 투자는 위축되고 있으며, 이미 수요 위축으로 궁지에 몰린 기업들의 처지는 말 그대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상태다.

다만 각국에서 계속 발표되는 다양한 대책들과 이번 위기를 업계 재편의 계기로 삼겠다는 기업들의 움직임들이 과연 위기라는 터널을 빨리 탈출하게 할 수 있을지 여부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계속되는 부정적 상황 = 4일에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경제 상황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들이 잇따랐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민간부문 고용 인원이 최근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금융업계를 중심으로 위기의 한파에 몸을 사린 기업들이 감원에 나선 탓인데, 미국에서는 올들어 지난 10월까지 12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지난달 서비스업지수도 37.3으로 지수가 산출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며 침체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키웠다.

국가 간 투자 전망 역시 불안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56개국 정부의 투자진흥기관들로 구성된 세계투자진흥기관협회(WAIPA)의 알레산드루 테이셰이라 회장은 신용 축소와 주가 하락, 대대적인 위험 자산 회피 현상 등으로 인해 내년 전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가 올해보다 12∼15%가량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추산한 지난해 세계 FDI 총액은 2006년보다 30%가 증가한 약 1조8천330억달러다.

FT는 유럽 지역 부실기업들의 부도 위험 지수나 미국의 신용디폴트스와프(CDS) 위험도 평가지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기업들의 부도 위험이 사상 최대 수준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대책 역시 계속된다 =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움직임 역시 계속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4일(이하 현지시간) 자동차 및 주택건설 분야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0억유로(약 37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금액은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한다.

인도 정부도 사회기반시설 투자와 중소기업 운영자금 저리 대출 등에 7천500억루피(약 22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중국 역시 금리와 지급준비율, 환율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공언했는데, 특히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대책을 발표하면서 환율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과 미국, 러시아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상환 불능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을 전망이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전날 차압 위기에 처한 대출자에 대해 최장 2년까지 모기지 이자의 일부를 유예하기로 영국내 8개 주요 금융기관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미 재무부가 양대 모기지 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발행하는 30년 만기 모기지 채권의 금리를 현재의 5.5%선에서 4.5%정도까지 낮추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관영통신 리아-노보스티와 이타르-타스는 알렉세이 쿠드린 재무장관이 이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만나 경제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면서 여기에 는 일부 민간은행이 보유한 부실 모기지 채권을 연내 사주는 내용도 포함돼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향후 3년간 고용대책을 중심으로 총 10조엔(약 160조원) 정도의 재정 지출을 단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기업들은 어떤 움직임 보이나 = 이번 금융위기가 기업들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예상은 점점 적중하고 있다.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이 자산이나 회사 자체를 매물로 내놓으면 여력을 가진 다른 기업이 사들이면서 규모를 키우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로부터 대규모 긴급 구제금융을 받은 AIG가 보유 중이던 일본 생명보험사 2개를 매물로 내놓자 프루덴셜 그룹이 인수 의사를 보였고, 2005년 스위스항공을 합병한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은 오스트리아항공도 인수하게 됐다.

다른 기업을 사들일 여력을 가진 우량 기업들은 물론 어떻게든 회생의 길을 찾으려는 기업들도 가깝게는 4일로 예정된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결정부터 멀게는 내년 3월 열릴 주요14개국(G14) 정상회의를 주시하며 향후 경영 계획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ECB가 기준금리를 더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큰 상황이며, 이탈리아에서 열릴 G14 정상회의는 세계 금융위기가 보통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이번 달에 반드시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다짐도 기업들의 경영 결정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서울연합뉴스) 김세진 기자 smi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