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일제히 추락, 고용.투자 등 각종 지표 악화
수요급감으로 유가급락 디플레이션 우려 점증

주요 선진국들이 심각한 경기침체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가운데 미국과 유럽 증시가 이틀 연속 급락하고 각종 경기지표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전세계 경제가 유례를 찾기 힘든 장기불황에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미국은 고용지표가 16년만에 최악의 실적을 보인데 이어 파산위기에 몰린 자동차산업에 대한 의회의 구제법안 처리가 연기되면서 증시가 폭락세를 나타내는 등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가고 있다.

유럽도 이틀째 주가가 하락한 가운데 스위스가 정책금리를 무려 1%포인트나 인하하는 비상조치를 취했으며 터키와 아이슬란드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런 가운데 수요급감으로 원유가격이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추락, 3년반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각 국의 소비자물가도 하락세를 보임에 따라 디플레이션의 우려가 점증하는 상황이다.

◇미국 경기지표 `만신창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는 지난주(11월 10-5일) 신규 실업급여 신청사자수가 54만2천명으로 16년만에 최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새로 실업자 신세가 된 사람이 한주에 54만명이나 생겨났다는 뜻이다.

이미 실업수당을 받고 있는 사람을 합치면 400만명이 넘는다, 실업자수가 400만명을 웃도는 현상은 3주 연속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1982년 이후 처음이다.

민간경제연구기관인 콘퍼런스보드는 이날 발표한 미국의 경기선행지수는 한달전에 비해 0.8% 하락했다.

앞으로 경기가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특히 경기선행지수는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0.6% 하락보다 수치가 더 나쁘게 나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9일 미국의 경기침체가 1년 이상 지속할 수 있다면서 내년 경제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0.2%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불안한 지표가 발표된 후 미 의회에서는 자동차산업에 대한 구제법안의 표결을 취소하고 3대 자동차업체 경영진에게 회생가능성과 구제자금의 용처에 대한 세부계획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자동차업체들이 파산지경에 몰린 사실은 잘 알지만 국민세금으로 구제자금을 투입할 경우 반드시 회생할 수 있다는 확답과 계획안을 내놓지 않으면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최후통첩을 내린 것이다.

이에 실망한 뉴욕 증시는 5.6%(445포인트) 급락했고 S&P 500지수는 11년전 수준으로 추락했다.

◇유럽.아시아 증시도 동반 추락

유럽 증시는 이날 3.8% 하락하면 이틀째 약세를 보였다.

일본은 20일 주가가 7%나 추락한데 이어 21일에서 급락세로 장을 시작했다.

대만 증시는 6년만에 4,000선이 붕괴한 채 개장하고 한국의 코스피 지수도 900선 붕괴를 위협하는 등 아시아 증시 전반이 동반하락하는 양상이다.

아시아 시장이 유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 다시 미국의 증시가 떨어지는 식으로, 공포에 질린 상대를 처다보며 공포감을 느끼는 식으로 `폭락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스위스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1%포인트나 인하, 연 1% 수준으로 하향조정했다.

스위스가 2000년 현재의 통화정책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단행한 금리 조정 가운데 가장 큰 폭에 해당한다.

6주만에 3차례나 금리를 인하할 정도로 상황이 다급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런 가운데 아이슬란드는 IMF에 21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승인받았으며 터키도 IMF로부터 200-4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라트비아 역시 구제금융을 받아야할 처지다.

◇소비침체에 투자위축 가속화

일본의 10월 공작기계 수주액은 810억엔으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무려 40.4%나 감소했다.

독일의 9월중 자본재 해외주문 실적은 14% 줄었다.

일본과 독일은 전세계 제조업 부문에 생산설비를 공급하는 기지 역할을 해왔으나, 설비의 해외주문이 급감하고 있다는 것은 전세계 제조업체들이 설비투자를 대폭 줄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을 보유한 미국에서 자국 자동차업체들이 파산지경에 몰린 것은 물론,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자동차업체의 현지 공장도 조업단축을 서둘러야 하는 형편이어서 설비증설은 커녕 기존 설비의 감가상각분도 메우지 못하는 현상이 진행되는 것이다.

도요타는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14개 공장에서 다음달 22일과 23일 이틀간 조업을 중단키로 했다.

24일부터 시작되는 연말휴가에 앞서 이틀간 조업을 중단함으로써 감산 규모를 확대키로 한 것이다.

혼다 역시 북미 공장에서 8월 이후 5만대 감산을 단행한데 이어 추가로 앨라배마 공장에서 1만2천대, 오하이오 공장에서 6천대등 1만8천대를 감산키로 했다고 20일 발표했다.

금융위기와 경기부진의 여파로 기업들이 감원을 단행하면 가계의 소비 여력이 축소되고 이는 다시 기업 입장에서 판매부진과 투자위축으로 확산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유가급락..디플레 우려 확산

국제유가는 3년반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20일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이 전날보다 4달러 떨어진 49.62달러로 폐장, 22개월만에 처음으로 50달러선 아래로 내려섰다.

미 연방고속도로관리당국이 19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9월중 미국내 자동차의 총운전거리는 107억마일로 4.4% 감소했다.

유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지만 수요가 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휘발유 등 각종 유류에 세금이 단순하고 세율도 낮기 때문에 원유가격 변동이 석유제품에 곧 바로 반영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최근의 유가급락세는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을 -1.0%로 떨어뜨렸다.

관련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소비자물가가 떨어진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해도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했지만, 이제는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인플레는 금리를 올려 잡을 수 있지만, 디플레는 정책적 대응이 쉽지 않아 그 폐해는 더 무섭다.

이미 미국의 정책금리가 연 1%로 떨어져 있고 추가로 금리 인하가 예정돼 있지만,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금리를 더 낮출 여력히 제한돼 있어 일본처럼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