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력 불구, 주가 폭락에 뱅크런 등 금융시장 초토화

거리에서 러시아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으면 당신은 경제 위기가 있다는 생각을 잊게 될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로 러시아 증시가 폭락하고 상점 선반은 텅텅 비어 있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태평한 반응이다.

15일 러시아의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러 온 30대 남성은 "난 주식을 하지도 않고 월급도 평소처럼 나온다"며 경제 위기에 대해 특별히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말 1천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25%가 경제 위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으며 57%는 현 경제 상황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보다 4% 오른 수치다.

이처럼 러시아인들이 금융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데에는 러시아 정부가 이와 관련해 부정적인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언론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주 RTS 종합지수는 19% 하락,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으나 러시아 관영 방송 채널 3곳 중 어느 곳에서도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신, 이들 방송은 금융위기 속 투자 기회라는 주제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러시아 최대 갑부 중 1명인 미하일 프리드먼의 대담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러시아 에코 모스크바 라디오의 블라디미르 바르포로메예프 부편집장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러 정부가 최근 모든 언론사에 "붕괴", "위기"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극적인 보도"를 삼가도록 지침을 내렸으며 "추락"과 같은 용어는 "하락"으로 순화해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금융기관 도산이나 은행 자금 부족과 관련된 보도 역시 금지된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파장을 축소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증시는 풍전등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서 은행 고객들이 무더기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가 발생, 금융시장이 초토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중소 소매금융을 담당하는 자산 40억달러 규모의 글로벡스(Globex)가 14일부터 고객들의 예금인출을 금지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AP=연합뉴스) e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