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괴멸."(일 이코노미스트 10월21일자),"슈퍼파워,미국의 시대는 저물 것인가. "(뉴욕타임스 12일자)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면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경제를 주물러온 미국의 쇠퇴를 예고하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장이 안정된다 해도 미국은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재정적자 증가로 달러화가 폭락,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905년 영국 제국주의의 몰락과정과 금융위기로 흔들리는 미국의 모습이 흡사하다고 분석했다. 페어 스타인브뤼크 독일 재무장관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슈퍼 파워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진 뒤 1년반이 지나면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패자군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장 체면을 구긴 나라는 미국이다. 60년 이상 지구촌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의 위상과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자산가격이 폭락하면서 유럽 아시아 등의 각국도 물론 피해를 입고 있다.

지구촌의 낙원으로까지 꼽혔던 아이슬란드는 외자가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악화됐다. 파키스탄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도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이들에 비해 세계 1,2위 외환보유국인 중국과 일본은 금융위기를 틈타 미 금융회사를 하나둘씩 집어삼켜 '승자군'으로 꼽힌다.

금융업계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장기 저금리에 편승해 차입경영으로 몸집을 불렸던 미국의 5대 IB(투자은행) 중 세 곳은 이미 사라졌다. 예금과 대출을 중심으로 영업을 해온 상업은행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어 건재하다.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회사에 비해 보수적인 경영을 해온 일본과 한국의 은행들도 피해가 크진 않았다. 지난 13일 미쓰비시UFJ가 모건스탠리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안정 위주로 경영해온 덕분일 것이다.

국제적인 공조체제가 가동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일단 안정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진짜 '경제위기'는 이제부터다. 실물경제 침체가 예상돼 각국의 서민들은 더 힘든 시기를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2개월 정도 지나면 금융위기가 잠잠해지겠지만 실물경제 악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된 다음 해 미국 정부는 '스뭇 홀리법'을 통과시켜 수입관세를 대폭 올렸고,영국은 '파운드화 블록'을 만드는 등 각국은 보호주의를 강화했다.

이번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실물경제 침체가 본격화되면 선진국은 물론 후진국들도 경제 회생을 위해 보호주의 색채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의존도가 큰 우리나라 입장에선 내년 이후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금융위기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국가는 물론 기업, 가계도 생산(소득)보다 소비(지출)가 많으면 위기에 취약하다는 점이 입증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산가격이 폭락하면서 무리한 차입을 통해 투자했던 개인들이 큰 낭패를 보고 있다. 근검절약하고 저축을 해야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야 할 때다.


최인한 국제부 차장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