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30년 '탐욕의 그늘'…言路 트는 계기 될수도"

중국에서 발생한 '멜라민 파동'이 3주째를 맞고 있지만 진화되기는커녕 확산일로다.

분유에서 시작된 멜라민 파문은 유제품으로, 또 사료와 가공식품으로 확대됐고 피해국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의 식품 첨가라는 부도덕한 행위의 주요 피해대상이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아기들이었고 더욱이 지난해 12월 멜라민 분유의 피해가 현실화됐는데도 해당 업체는 물론 감독책임이 있는 중국의 지방정부 등이 9개월간 은폐했다는 점에서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파동이 쉽게 가라앉을 분위기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 왜 발생했나

간쑤(甘肅)성에서 영아 1명이 사망한 것을 포함해 59명이 신장결석 증세를 보였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회사에서 만든 분유를 먹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싼루그룹에서 제조한 분유가 공통분모였고, 문제의 분유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고 중국 당국이 지난 9일 확인하면서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탐욕은 분유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요구르트 등의 유제품, 그리고 빵과 과자, 사료 등의 가공식품에도 손을 뻗친 것이 확인됐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이런 짓이 자행됐다는 점에서 지구촌은 경악했다.

관련 제품은 물론 멜라민이 섞인 원료를 수입한 나라들은 모두 불안에 떨고 있다.

현재 중국산 유제품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린 곳은 모두 수십개국에 이르며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 당국은 조사를 벌인 결과 싼루그룹이 멜라민 분유에 대한 문제점을 작년 12월부터 파악했으면서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올림픽을 1년도 채 안 남긴 시점에 이 문제가 불거져 국가 이미지가 추락할 것을 우려해 상당히 긴 기간을 숨겨왔을 가능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건을 인지한 직후 공개하고 조치를 취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이를 숨김으로써 중국뿐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 허술한 식품관리…예견된 사고

사실 사건의 시발은 단순하다.

돈을 더 벌려고 단백질 함량을 높이는 값싼 공업용 화학물질인 멜라민을 첨가한 것이다.

외견상 우유 단백질 분말과 멜라민이 구분되지 않을뿐더러 누가 섞었는지도 모르는 익명성이 '범죄'로 쉽게 이끌었다.

그러나 중국 내에 이를 감독할 기구는 사실상 전무했다.

구속된 한 낙농업자는 "싼루그룹으로부터 기준 미달로 공급을 거절당한 우유에 단백질 함유량을 높이기 위해 화학물질을 섞었다"고 털어놨다.

우유는 제품 특성상 낙농업자의 손을 거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낙농업자와 중간 유통업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화학물질을 타서 단가를 낮출 수 있었던 것이다.

제조업체 역시 낙농업자와 유통업자의 '부정행위'를 확인할 장치를 갖추지 못했고 이렇게 공급된 원유는 분유와 유제품, 가공식품 공장으로까지 퍼졌다.

하지만 분유는 물론 유제품 생산과정을 볼 때 제조업체들 역시 멜라민 첨가에 가세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번 파문이 중국 식품산업 전반에 걸쳐 직면한 과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중국사무소 대표인 한스 트뢰드손은 완벽한 식품안전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유엔 산하 세계식량기구(FAO)의 중국사무소 부대표인 장중쥔은 "협력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관련 부처간 "대화와 협력이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도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의 관리 부재를 사실상 시인하고 있다.

쑨정차이(孫政才) 농업부장은 "원유 생산 중간단계에서의 정부 당국의 관리는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고 인정했다.

◇ 어떻게 수습될까

중국 정부는 멜라민 파문을 국가1급 안전사고로 규정하고 각종 조치에 나섰다.

위기감이 묻어난다.

질검총국 고위관리인 허우링린은 "향후 2년 내에 전국에 걸쳐 400개에 이르는 생산물 검사기관을 신설할 예정이며 이 가운데 80개 기관은 음·식료품의 안전검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부는 공안부와 위생부 등과 공동으로 모든 유제품 제조업체에서 사용하는 우유 저장창고에 대한 등록과 철저한 조사에 들어갔다.

제과류에 대한 조사도 하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멜라민 파동에 대한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지시하고 당정 간부들에 대한 기강해이를 질타하고 나서면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파동은 쉽게 가라앉을 모양새가 아니다.

이웃인 한국에서 지난 26일 추가로 커피크림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것을 비롯, 중국산 제품 전반에 대한 안전성 검사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탓에 멜라민 함유 제품이 더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파동의 근본적인 원인은 중국 사회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안전 불감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질 분유, 유해 애완동물 사료, 독성 치약, 불량 아동완구 등 매년 중대 안전사고가 되풀이되지만 개선은 요원하다는 비판이 중국 안팎에서 일고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30년간 경제개발의 효율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사회적 책임과 상도의를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이번 위기를 맞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언로(言路) 트는 계기되나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에 언론의 자유가 다소 확대됐다는 시각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국에서 '중국 비판'은 일종의 금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어두운 면' 감추기는 극에 달했고 중국내 매체는 '스스로 알아서' 여기에 협조했다.

멜라민 분유 파문을 촉발한 싼루(三鹿)사는 지난해 12월 자사 분유를 먹은 아기들이 신장결석에 걸렸다는 진정을 접수했고 해당 지방정부인 허베이성이 지난 8월2일 멜라민 분유의 진상을 보고받았음에도 모두 이를 은폐하려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중앙정부가 이달 초 멜라민 분유 사태를 공개한 이후 행태는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의 불만의 목소리가 통제되지 않고 있고 중국내 포털 사이트는 물론 관영언론까지 멜라민 사태 때리기에 가세하고 있다.

'여론 통제국'인 중국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멜라민 유제품에 대한 분노가 들끓는 것으로 과거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얘기다.

멜라민 파동을 계기로 중국에 '언로(言路)'가 트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중국 정부가 2008년 12월로 개혁개방 3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뒤늦기는 했지만 멜라민 사태를 계기로 내부 비판을 적극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번 멜라민 파동이 중국 사회에 끼칠 사회적 변화에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j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