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러시아 경제 '급브레이크' … 그루지야 사태로 外資급속이탈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힘입어 잘 나가던 러시아 경제에 급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 그루지야 전쟁에 따른 미국과 러시아 간 신냉전 조짐,석유회사인 TNK-BP 경영권을 둘러싼 영국과의 갈등으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 이탈 등이 주 요인이다. 실제 그루지야 사태 이후 러시아에서 외국자본이 급속히 이탈하고 있다. 1998년 러시아가 외환위기로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한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주가와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고 채권금리는 급등(채권값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도 불안한 모습이 역력하다.

◆외환보유액 10년 만에 최대폭 감소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러시아 중앙은행의 자료를 인용해 그루지야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난 8일 이후 한 주 동안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이 164억달러 이상 줄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2006년 6월 러시아 정부가 파리클럽 채권단에 채무를 조기 상환했을 당시 한 주간 165억달러가 준 것을 제외하면 10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주식과 채권시장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러시아 RTS지수는 그루지야 사태 발발 직전인 지난 7일 이후 6.5% 하락했다. 지난 19일엔 하루 새 92.69포인트(5.2%) 급락하며 1685.60까지 떨어져 2006년 11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21일엔 이보다 오른 1722.41에 마감됐지만 올해 최고점이던 지난 5월19일의 2487.92에 비하면 30%가량 떨어진 수준이다.

올들어 그루지야 사태 직전까지 4%나 올랐던 루블화 가치도 약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14일 달러당 23.15루블로 올해 최고치까지 치솟았던 루블화 가치는 22일 달러당 24.32루블(장중)로 떨어졌다. 러시아중앙은행은 루블화의 급격한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개입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도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루블화로 러시아 국내에서 발행되는 채권 수익률(금리)은 지난달 이미 1.5%포인트 오른 상태다. 겐나디 멜리크얀 러시아중앙은행 부총재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등 일부 러시아 자산을 매각하고 있으며 루블화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며 "하지만 루블화 가치가 거의 바닥에 온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러 기업 총수들,푸틴에 우려 전달

현재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5810억달러로 세계 3위다. 외환보유액이 200억달러를 밑돌던 1998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FT는 러시아의 재무상태가 탄탄하긴 하지만 최근의 외자이탈은 러시아 역시 글로벌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지면 러시아 기업이 주식이나 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장기 투자자금의 상당 규모를 외자에 의존하고 있어 외자이탈에 취약하다.

러시아 재계에서도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대기업인 인테로스의 블라디미르 포타닌 회장은 20일 러시아 경제지 베도미스티와의 인터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직접 업계의 불만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 열릴 '올리가르히(거대 재벌)'들의 모임인 러시아 산업기업가연맹(RUIE)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의 회동에서도 장기자본 부족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러시아뿐 아니라 그루지야도 전쟁으로 인해 떠난 외국인 투자자들을 다시 끌어들이지 못할 경우 지난해(12.5%)와 같은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 미국이 폴란드와 미사일방어(MD) 협정을 맺자 러시아는 시리아에 방어용 무기를 판매하겠다고 나서는 등 양국 간의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이날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 원유(WTI)는 5.62달러(4.9%) 오른 배럴당 121.18달러에 마감됐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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