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가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지역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남부지역 간 해묵은 대립이 또다시 폭발하며 국가 분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에 따라 벨기에 정부는 스위스식 연방제 개헌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0일 보도했다.

두 언어권의 갈등이 다시 불거진 계기는 지난 14일 이브 레테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 의사 표명이었다. 지난 3월 취임한 레테름 총리는 전체 인구 1050만명 중 60%를 차지하는 네덜란드어권의 북부 플랑드르 지역과 소수파인 프랑스어권의 남부 왈로니아 지역 간 갈등 해소를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며 개헌을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벨기에 국왕 알베르 2세는 총리 사표를 반려하고 네덜란드어권과 프랑스어권,독일어권 출신 3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지역 반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벨기에가 현재의 언어권별 연방제보다 지역 자치정부의 권리를 더욱 확대,각각의 주 정부가 하나의 도시국가 역할을 수행하는 수준인 스위스 연방제를 모델로 한 개헌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벨기에는 언어와 문화 차이를 수용하기 위해 1970년 이후 네 차례에 걸친 개헌을 통해 지방자치를 확대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벨기에는 1830년 건국 이래 △북부 네덜란드어권 △남부 프랑스어권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가 함께 쓰이는 수도 브뤼셀 △동부 독일어권 등 4개 언어권으로 구성돼 있다. 벨기에의 언어권 분리 역사는 3세기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벨기에 지역에는 프랑스어 계통의 왈론어를 쓰는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네덜란드어 계통의 플라망어를 쓰는 프랑크족이 침범해오면서 켈트족은 남쪽으로 밀려났고 이때부터 북쪽은 네덜란드어권,남쪽은 프랑스어권으로 굳어졌다.

남북 간 경제 격차도 심각해 지역 반목을 부채질하고 있다. 14세기 후반 르네상스 시기부터 북부 플랑드르 지방엔 유럽 각국의 귀족 등 부르주아 계층이 자리잡으며 상공업이 발전했다. 반면 남부 왈로니아는 농업과 광산업에 의지하며 남북 간 경제 규모 차이가 점차 커지게 됐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