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고유가ㆍ신용위기ㆍ주택경기 침체로 경기하강 위험 커져"

금리 상단기간 동결…하반기 성장 악화될 듯

신용위기 재연 등의 여파로 다우지수가 2년 만에 11,000선 밑으로 내려갔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 경제가 고유가,신용위기,주택경기 침체라는 '3중고'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경기하강과 인플레이션 증대 위험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 등 정부 수장들이 총동원돼 시장 안정에 나서고 있지만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제2의 경기부양책'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인식 바꾼 버냉키

버냉키 의장은 15일(현지시간)과 16일 잇따라 상원과 하원 청문회에 참석,반기통화정책 보고를 통해 "미 경제가 '수많은 어려움'(numerous difficulties)에 직면해 있다"며 경제를 위협하는 세 가지 요인으로 고유가와 신용위기,주택경기 침체를 꼽았다. 그는 "이로 인해 경기하강 위험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며 "이는 통화정책을 결정하는데 중대한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버냉키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6월 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내놓은 통화정책 성명서에서 "경기하강 위험(리스크)이 감소했다"고 밝혔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당시엔 인플레이션 압력 증대를 강조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날 경기하강 위험과 인플레이션 위험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상당기간 기준금리를 동결할 방침임을 나타낸 것이다.

버냉키 의장이 이처럼 경기하강 위험을 다시 언급하고 나선 것은 최근의 신용위기가 심상치 않은데다 주택경기 침체가 예상외로 길어지면서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시장 불안 지속

미 감독당국은 우선적으로 금융시장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버냉키 의장은 "현 상황에서 FRB의 최대 주안점은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토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양대 국책 모기지회사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대한 지원조치를 처리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폴슨 장관은 "두 국책 모기지회사가 발행한 채권이 정상적으로 유통되도록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장(SEC)도 "두 국책 모기지회사와 골드만삭스 등 17개 대형 금융회사 주식에 대해선 (주가 급변동을 막기위해) 공매도를 30일간 금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 심리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모습이다. 무디스는 15일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두 회사 주가는 또 다시 각각 27%와 26% 급락했다. 여기에 버냉키 의장의 경기침체 위험 증가 발언까지 가세해 다우지수는 이날 92.65포인트(0.84%) 내린 10,962.54로 마감됐다. 다우지수 11,000선이 붕괴된 것은 2006년 7월 이후 2년 만이다. 미 6월 소비자물가지수도 전월 대비 1.1% 올라 2005년 이후 3년만에 최대상승폭을 나타냈다.

이처럼 금융 불안이 점증되고 미 경제가 진퇴양난에 빠진 것으로 확인되자 민주당을 중심으로 제2의 경기부양책이 추진되고 있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우리는 또 다른 경기부양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초당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총 1780억달러 규모의 세금 환급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행정부와 의회가 모두 나서 투자심리 진정에 나서고 있지만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유가 하락

국제유가는 미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감소 전망 영향으로 17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15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8월물 인도분 가격은 6.44달러(4.44%) 급락한 배럴당 138.7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낙폭으로는 1991년 1월17일 이후 최대치다. 장중 한때 9.26달러 추락한 135.92달러까지 밀리기도 했다. 16일 역시 장중 5.43달러 떨어진 133.31달러까지 내려앉으며 이틀째 급락세를 이어갔다.

국제유가는 이달 들어 변동성이 커져 하루에 배럴당 5~6달러나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거듭하면서 배럴당 150달러 선은 쉽게 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150달러가 '3차 오일쇼크'의 기준이 되면서 시장 안에서 자발적 가격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억만장자 투자자인 윌버 로스는 "유가 급등의 원인은 거품 때문"이라며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유가 수준은 비정상적이며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유병연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