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호 = 7일 모스크바 크렘린 대궁전에서 열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2) 대통령 취임식의 주인공은 당사자인 메드베데프 대통령 외에 또 한 명의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8년 집권을 마치고 자신의 정치 제자인 메드베데프를 당당히 대통령에 앉히면서 자신은 총리가 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취임식에 전.현직 대통령이 함께 자리를 한 것은 지난 1991년 러시아 연방 출범 이후 처음이다.

지난 2000년 대통령 취임식 당시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참석하긴 했지만 그 때는 이미 그가 대통령직을 사임한 후였다.

전국에 생중계된 이날 취임식에서 상.하원 의장과 헌법재판소장에 이어 입장한 푸틴 전 대통령은 이들과 나란히 단상에 서서 크렘린궁의 새 주인이 된 메드베데프를 기다렸다.

낮 12시 정각 크렘린궁에 도착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과거 차르(러시아 황제) 즉위식이 열리던 대궁전내 앤드루 홀까지 취임 축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다.

눈길을 끈 것은 관례대로라면 통상 대통령 취임 선서가 다음 순서지만 이날은 전임자인 푸틴 전 대통령의 이임사 겸 후임자에 대한 축하 연설이 이어졌다.

푸틴 전 대통령은 "지난 8년간 나를 믿고 따라 온 국민에게 감사한다"면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책임을 다해 러시아를 성공적으로 이끌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푸틴 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취임 선서와 러시아 국가 연주, 신임 대통령의 4년 국가 운영 방침을 담은 취임사가 이어졌다.

취임식은 30발의 예포가 울리고 두 전.현직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 근위대가 크렘린궁 내 소보르나야 광장을 행진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취임식이 열린 이날 모스크바에는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기온도 평년에 비해 10도 가량 떨어져 5월 봄날 치고는 을씨년스런 날씨를 보였다.

이날 취임식을 지켜 본 일부 비평가들은 지난 8년간 푸틴 전 대통령이 러시아 국민들에게 남긴 `유산'이 너무 큰 탓인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푸틴 전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왔기 때문인지 취임식 분위기가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는 평가를 내렸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푸틴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했고 8일 하원에서 총리 인준 동의안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모스크바 정가에서는 푸틴 전 대통령이 총리에 앉게 되면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수렴청정'하면서 실세 총리가 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한편 취임식 직후 빅토르 주프코프 총리 등 내각은 헌법에 따라 총사퇴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