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냐 몰락이냐.
미국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운명이 펜실베이니아주 유권자들의 손에 달렸다.

힐러리가 22일 실시되는 펜실베이니아주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압승할 경우, 그간의 부진을 떨치고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승리를 향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만에 하나 선두주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패배한다면, 힐러리는 당장 백기를 들어야 할 지도 모른다.

AP통신과 CNN이 집계한 후보별 대의원 수에 따르면 오바마는 각각 1천648.5명과 1천644명을 확보, 힐러리(1천59.5명과 1천498명)를 139-146명 앞서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를 포함, 불과 10곳 밖에 남지 않은 나머지 경선에서 힐러리가 큰 격차로 이기지 못하면 대의원 수의 열세를 뒤집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펜실베이니아에서 패배한다면 승산은 물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힐러리가 근소한 차이로 간신히 이기는 경우에도 패색은 짙어질 전망이다.

오바마가 이미 훨씬 앞서가고 있는 경선에서 힐러리가 의미 있는 역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레이스는 오바마가 앞선 채로 끝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힐러리는 어떻게든 펜실베이니아에서 상당한 격차로 오바마를 눌러 자신이 캘리포니아와 뉴욕, 텍사스, 오하이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같은 대형주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뚜렷이 입증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런 대형주에서 이기지 못하면 승산이 없는 11월 본선에 자신이 나가야 한다는 힐러리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유일한 역전의 희망인 '슈퍼 대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힐러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20%포인트에 달하던 펜실베이니아주에서의 힐러리 우세는 선거 직전이 21일엔 6∼10%포인트로 높여잡아도 반토막이 났다.

슈퍼 대의원들의 지지도 오바마 쪽으로 꾸준히 몰리는 반면, 힐러리 쪽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갈수록 현저해지는 자금력의 열세는 힐러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20일 발표된 각 후보별 재정보고서에 따르면 오바마는 지난달 4천100만달러(약 400억원)를 모금했다.

오바마의 은행 잔고는 5천100만달러로 11월 대선 자금 900만달러를 제외하고도 경선용 '실탄'이 4천200만달러에 달했다.

이에 비해 힐러리의 3월 중 모금액은 오바마의 절반도 안되는 2천만달러에 머물러 은행 잔고가 900만달러에 불과했다.

게다가 힐러리가 진 선거빚이 1천30만달러여서 실제 재정상태는 100만달러 이상 적자인 셈이다.

힐러리는 여론조사기관이나 광고회사, 선거참모 등에게 갚지 못한 빚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선거운동에 쏟아붓는 '실탄'의 물량도 힐러리는 오바마를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오하이오와 텍사스 등 대형주들의 경선이 치러진 3월 한 달간 힐러리가 쓴 선거자금은 2천200만달러인 반면, 오바마는 3천60만달러를 투입했다.

펜실베이니아 경선에 투입한 오바마의 자금 규모도 힐러리의 거의 세 배에 달한다고 힐러리측은 주장하고 있다.

힐러리가 불어나는 선거 빚을 줄이고 모금액을 늘리는 길도 펜실베이니아 경선 압승 밖에는 없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오바마에게 지거나 근소한 차이로 겨우 이길 경우 힐러리는 경선 승리의 희망이 멀어지는 것은 물론 당내 사퇴 압박이 가중되고 재정난이 심화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할 전망이다.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