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의 신용위기가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월가 금융회사들의 부실자산 추가 상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번엔 미 5대 투자은행으로 꼽히는 베어스턴스의 유동성 위기설이 뉴욕 증시를 강타했다.

여기에 조만간 중대형 은행의 파산 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베어스턴스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흉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베어스턴스 최고경영자(CEO)인 앨란 슈와츠가 "턱없는 소문"이라며 "앞으로 12개월 동안 채권을 추가 발행하지 않고도 무보증채권을 100% 상환할 수 있을 정도로 유동성은 충분하다"고 진화에 나섰는데도 소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베어스턴스 주가는 11% 하락하며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베어스턴스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비용도 뛰었다.

CDS는 채권 발행업체의 채무 불이행에 대비하기 위해 드는 보험 성격의 신용파생 상품이다.

스와프 비용이 높아졌다는 것은 부도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걸 뜻한다.

게다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베어스턴스가 발행한 알트에이(Alt-A) 모기지 담보부증권 중 163개군에 대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불안감을 부채질했다.

알트에이 모기지는 서브프라임보다 우량한 채권이다.

베어스턴스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투자자들은 벤 버냉키 FRB 의장의 경고를 떠올렸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달 말 의회에서 "대형 은행들은 위기를 넘기겠지만 중소형 은행들은 힘겨울 것 같다"고 말해 은행들의 파산 가능성을 제기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윌버 로스도 이날 CNBC 방송에 출연해 "이번 위기가 예전과 다른 점은 아직 파산한 대형 금융회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조만간 중대형 은행 중에 파산 위기에 처하는 곳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용위기가 심화되면서 금융회사들의 실적 전망도 하나같이 '흐림'이다.

모건스탠리는 이날 씨티그룹 등 미 10대 은행의 올 순이익이 작년보다 88억달러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씨티그룹은 1분기 월가 투자은행들의 부실자산 상각규모가 9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식이라면 자산 상각규모가 6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UBS의 분석이 틀리다는 법도 없다.

신용위기가 심화되고 금융회사 부실이 커지자 FRB가 조기에 금리를 낮추더라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FRB는 지난 1월22일에도 0.75%포인트 금리를 전격 내렸었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다음주로 예정된 투자은행들의 1분기 실적발표에 쏠리고 있다.

실적이 예상보다 나으면 FRB의 금리인하와 맞물려 신용위기에 대한 불안감도 잦아들 수 있다.

반대로 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금리인하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러더스는 오는 18일,모건스탠리는 19일,베어스턴스는 20일에 각각 1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