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경선 4개주 예비선거가 치러진 4일 '미니 슈퍼화요일' 대결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텍사스와 오하이오, 로드 아일랜드 주에서 승리함으로써 극적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지난달 5일의 '슈퍼화요일' 이후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11연패를 당하면서 거의 사퇴 위기로까지 몰렸던 힐러리 입장에서는 천금같은 승리인 셈이다.

특히 텍사스와 오하이오는 선출 대의원 수가 각각 193명과 141명에 달하는 큰 표밭 중 하나여서 힐러리에게는 승리가 절실한 지역이었다.

이번 힐러리의 승리로 민주당 경선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힐러리는 경선의 첫 관문이었던 1월3일의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변화와 희망을 앞세운 오바마 돌풍에 밀리고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에게도 뒤진 3위에 그치는 뼈아픈 패배로 위기에 몰린 뒤 뉴햄프셔에서 '눈물'과 함께 승리를 거둬 극적으로 부활했었다.

힐러리는 이번 텍사스와 오하이오, 로드아일랜드에서의 승리로 오바마와 대의원 수 확보면에서 여전히 근소한 차이를 유지하면서 오는 4월22일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까지 승부를 연장해 대역전극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 한 달 가량 파죽지세로 이어진 오바마의 연승 행진을 저지한 것도 힐러리 진영으로선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예비선거 전부터 선거전문가들은 힐러리가 경선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길은 미니 슈퍼화요일 선거에서 승리하는 길밖에 없다고 지적해왔다.

민주당 내에서는 공화당 후보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결정된 상황에서 민주당 후보의 결정이 늦어지는 것이 본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뒤지고 있는 힐러리를 향한 사퇴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경선에 참가했다 중도하차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주지사는 2일 CBS 방송에 출연해 "미니 슈퍼 화요일 경선 결과 대의원 확보 수가 적은 사람이 민주당의 단합을 위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과 딕 더빈 상원의원도 "힐러리가 경선을 계속하려면 4일 예선에서 적당히 이겨서는 안되고, 크게 이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조속한 본선 체제 구축을 위한 힐러리 사퇴론에 가세했다.

힐러리 진영은 이 같은 위기의식 속에 이번 예비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며 텍사스와 오하이오 곳곳을 누볐다.

힐러리 진영은 만약 오바마가 미니 슈퍼화요일에 4곳 모두에서 이기지 못하는 한 힐러리가 일단 경선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힐러리 본인도 3일 기자들과 만나 "이제 겨우 몸을 풀었다"면서 향후 경선에 계속 참여할 것임을 분명히 했었다.

민주당 유권자들의 다수도 힐러리가 텍사스와 오하이오주 중 어느 한 곳에서 승리하면 경선에 계속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조사돼 힐러리 진영에 경선 지속의 근거를 제공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이 최근 민주당 당원 및 친(親)민주당 무소속 유권자 629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힐러리가 최대 격전지인 텍사스주와 오하이오주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승리하더라도 경선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견해는 29%였다.

반면 경선에 계속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은 67%로 응답자의 3분의 2를 넘었다.

따라서 힐러리 진영으로서는 이번 승리로 경선을 지속할 충분한 명분을 얻은 셈이다.

또한 힐러리가 최근 연패를 하기는 했지만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매사추세츠 등에 이어 텍사스, 오하이오까지 본선에서 대의원 수가 많은 대부분의 주에서 승리했다는 것도 승자 독식 방식인 본선에서 힐러리의 경쟁력에 대한 주장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근래 미국 대선 역사에서 오하이오 예비선거에서 이기지 못하고 대통령이 된 경우가 없다는 점도 힐러리 진영을 고무시키고 있다.

힐러리는 이날 밤 오하이오 선거본부에서의 연설에서 이 점을 강조하며 자신이 대선 후보 적임자임을 알렸다.

그러나 민주당 입장에서는 힐러리와 오바마의 이 같은 접전은 8월의 전당대회까지 후보가 정해지지 않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 걱정거리다.

이에 따라 당의 중진들이 이번 경선의 키를 쥐고 있는 슈퍼대의원들을 설득, 특정 후보를 대거 지지토록 함으로써 조기에 후보 단일화를 유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힐러리가 경선을 지속하더라도 오바마에 크게 밀리고 있는 자금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도 과제다.

오바마는 이번 미니 슈퍼화요일을 앞두고 힐러리의 대권 도전을 끝낼 수 있는 승리를 거두기 위해 텍사스와 오하이오에서 엄청난 물량의 방송 광고와 선거운동원 확대에 자금을 쏟아부으며 힐러리를 압도했다.

오바마 진영은 2월 초 이후 텍사스에서 TV 광고에 1천만달러를 투입해 500만달러에 못 미친 힐러리를 배 이상으로 앞섰고, 오하이오에서도 530만달러를 TV 광고에 써 300만달러에 미달하는 힐러리 진영을 압도하는 등 배 가량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서 총공세를 폈다.

.
오바마는 슈퍼화요일 이후 자금이 부족해진 힐러리 진영의 일부 관계자들이 무급의 자원봉사로 일하는 시기에 200명의 유세 조직원들을 텍사스에 파견했고 오하이오에도 150명을 보내는 등 현장 운동도 강화해왔다.

결국 이번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향한 힐러리의 행보는 여전히 험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