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Focus]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끄는 멜린다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세계의 유력 정치 경제인사들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의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 연설에 귀를 기울였던 지난 24일. 게이츠 회장의 부인 멜린다 게이츠(42)는 앞자리에 앉아 조용히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이틀 후인 26일 오전 멜린다는 200명의 특별 손님들 앞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남편이 가난한 사람까지 보듬어 안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역설한 뒤여서 멜린다는 건강,개도국 경제,여자 문제 등 구체적인 이슈들에 관한 자기 생각,그리고 남편과 함께 이끄는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게이츠 재단)이 할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거의 매년 참석하는 다보스 포럼에서 가진 첫 연설이었다.세계 최대 재단을 공동 이사장 자격으로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지만 가능하면 조용히 움직였다.재단 일에 전념하고 제니퍼,로리,페베 등 세 아이들을 볼봐야 하기 때문에 대외적인 행사는 삼갔다. 하지만 앞으론 멜린다의 활발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빌이 6월이면 MS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재단 사업에만 전념키로 해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330억달러를 움직이는 빌과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규모에서 세계 최대다.자산은 331억2000만달러(약 31조원).지금까지 기부한 액수만도 144억달러.좀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고 싶다는 게이츠 부부의 소망이 상상을 초월하는 자산과 기부금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이 재단 운영의 큰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바로 멜린다.남편 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해 큰 돈을 벌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다.

게이츠 부부는 자신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보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그동안 소홀히 여겨진 분야는 어디인가.게이츠 재단은 그 답을 토대로 세 가지 분야에 집중 지원하고 있다.

우선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말라리아,결핵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 퇴치를 위해 2006년에만 18억달러를 썼다.미국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로타바이러스(장염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때문에 매년 개도국 어린이 50만명이 죽는다는 뉴욕타임스 1면 기사를 멜린다가 읽고 나서부터다.멜린다는 2004년 인도의 콜카타에 있는 테레사 수녀의 선교회를 방문했을 때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에이즈 환자의 손을 잡으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에이즈에 걸린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예요"라고 말했다.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냉랭한 그 여자는 결국 멜린다의 진정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관심 분야는 교육이다.게이츠 재단은 2006년 4억6200만달러를 고등학교 교육 개혁에 지원했다.미국 고등학생 중 30%가 제때 졸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게이츠 부부는 1800여개 고등학교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게이츠 재단이 도움을 준 43개 지방 고등학교의 졸업률은 2년 만에 35%에서 73%로 급격히 오르는 성과를 냈다.

게이츠 재단은 저개발국의 경제 발전도 돕고 있다.특히 아프리카에서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곡물 수확량을 늘리는 농업 혁명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다양한 자선활동을 하는 게이츠 재단은 2000년 출범했다.빌 게이츠가 세계 보건 향상을 위해 아버지의 이름을 따 1994년 세운 '윌리엄 게이츠 재단'과 3년 후인 1997년 부인과 함께 세운 '게이츠 교육재단'을 합쳐 1억2600만달러의 자산으로 발족됐다.

[People In Focus]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끄는 멜린다

◆자선활동의 아이디어는 멜린다 작품

게이츠 부부는 집 주변을 산책하면서도 아프리카에 지원할 비료에 대해 논의할 정도로 자선활동에 열정적이다.두 사람은 어떻게 재단을 운영할지에 대해 서로 상의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동반자다.빌은 일주일에 40시간 정도를 자선활동에,MS 업무에 15시간을 쓴다.

그가 생활의 중심을 자선활동에 두게 된 데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멜린다의 역할이 컸다.재단도 멜린다가 없었다면 생길 수 없었다.자선활동에 대한 생각을 빌에게 처음으로 심어준 사람이 멜린다였고 재단 설립 이후 주도적으로 재단을 이끌어 나간 사람도 그녀였다.빌은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몰랐다"며 "멜린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말했다.

빌과 멜린다는 MS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으로 처음 만났다.듀크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MBA(경영학석사)까지 받은 후 멜린다는 첫 직장으로 MS를 선택했다.그곳에서 마케팅 담당 업무를 시작한 멜린다는 4개월 후 뉴욕에서 열린 PC 전시회에 참석했다가 CEO(최고경영자)인 빌의 옆에 앉게 되었다.멜린다는 "빌은 생각보다 재밌는 사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빌은 "아마도 멜린다의 외모에 끌린 것 같다"고 첫 만남을 기억했다.

◆숨은 공헌자는 워런 버핏

우연한 첫 만남 뒤 빌은 멜린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어렵사리 첫 데이트를 했지만 멜린다는 대중에 드러나기를 꺼렸고 둘의 관계가 일에 영향을 미치길 원치 않았다.결혼까지는 멀어 보이던 둘의 관계를 발전시켜준 사람은 바로 빌의 오랜 친구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빌과 멜린다는 1993년 부활절 휴가 때 캘리포니아에 사는 빌의 부모님을 만났다. 빌은 개인용 비행기로 시애틀로 돌아오는 길에 멜린다 몰래 방향을 돌린다.도착한 곳은 시애틀이 아니라 버핏이 기다리고 있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였다.빌이 버핏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

결혼을 성사시켜주고 싶었던 버핏은 둘을 자신의 회사가 운영하는 백화점 귀금속 상점으로 데리고 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네 몸값의 6% 금액의 반지를 사주는 것이 이곳의 법칙"이라며 결혼 반지를 고르게 했다.빌은 큼직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멜린다에게 선사했고,둘은 결혼에 골인했다.1994년 1월1일이었다.

그 뒤 버핏은 게이츠 재단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된다.1991년부터 게이츠 부부의 오랜 친구인 버핏은 "빌은 지독할 정도록 똑똑하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멜린다가 더 낫다"고 평한다.게이츠 재단에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한 버핏은 "만약 멜린다가 없었다면 내가 투자를 했을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할 정도다.버핏은 2006년에 34억달러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그는 벅셔해서웨이의 주식 900만주(시가 410억달러)도 기부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버핏은 처음에는 재산을 죽을 때까지 갖고 있을 계획이었다.그의 생각이 바뀐 것은 부인 수지가 세상을 떠난 2004년.그는 고심을 거듭하다 2006년 봄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빌에게 전한다.버핏은 "빌은 서툴고 한쪽으로 기운 사람이었지만 멜린다가 그를 중심잡힌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빌에게서 젊은 시절의 나를,멜린다에게서 생전의 내 부인을 떠올린다"고 말한다.그는 거액을 기부하면서 "목표에 집중하라"는 충고 하나만 남겼다.

미국 최고 부자인 게이츠 부부는 재산의 95%를 자선사업에 쓸 계획이다.게이츠 부부는 자녀에게 얼마를 유산으로 남겨줄지에 대해선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두 사람은 버핏의 철학을 따르겠다고 밝혔다."아주 부유한 사람은 자녀에게 충분한 돈을 남길 수 있지만 아무런 일을 안 해도 될 만큼 많아서는 안 된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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