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우세 州에서 선전..돌풍의 불씨는 남아

238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은 아직 험난한 길인가.

8일 실시된 미국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각종 여론조사 예측과 달리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간발의 차로 패배함으로써 미국 사회의 인종적 편견의 벽을 실감케 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꿈을 키워온 오바마는 지난 3일 백인이 90% 이상 차지하는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승리한 뒤 첫 프라이머리가 실시되는 뉴햄프셔에서도 오바마 열풍을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뉴햄프셔에서는 미국 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들의 세계를 파고들지 못한 채 소수계 출신 후보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번 프라이머리에는 예상보다 많은 유권자들, 특히 아무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무당파 유권자들이 대거 참여함에 따라 오바마가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섣부른 기대감을 낳기도 했다.

AP 등 미 언론들의 출구조사 결과 힐러리는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오바마는 무당파 투표 참여자들 사이에서 확연하게 인기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뉴햄프셔에서 패배한 것은 인종적 편견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뉴햄프셔주는 백인이 전체 유권자의 96%를 차지하고, 흑인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시안계(1.2%)보다도 적다.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이 흑인 대통령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김칫국부터 마실 때 침묵하던 다수는 `아직 흑인대통령의 시대는 아니다'라며 조용히 투표장으로 발길을 행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오바마의 석패에는 전날 유세도중 힐러리가 눈물까지 보이면서 읍소작전을 펼친 게 적잖이 작용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에게 기울던 백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첫 여성 대통령감의 눈물이 원위치시킨 셈이다.

오바마가 힐러리에 비해 정치적.사회적 경륜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도 유권자들에게 안정감, 신뢰감을 주지 못한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힐러리는 유세 동안 오바마 돌풍을 의식한 듯 "누가 좋은 대통령감인지 따져보려면 그들이 무엇을 이루어 놓았는 지 따져봐야 한다"며 경륜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거침없는 하이킥은 계속될 전망이다.

오바마는 백인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기대를 넘는 선전을 거둠으로써 향후 경선과정에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국적인 지지도에서 힐러리에 비해 10% 이상 크게 뒤졌던 오바마는 최근 갤럽의 조사에선 33%로 동률을 기록하며 힐러리를 위협하는 정치적 실체로 떠올랐다.

또 오바마의 정치적 상승은 흑인은 물론 히스패닉이나 아시안계 등 미국 내 소수인종들에게 많은 정치참여의 동기를 부여하고 소수인종들의 정치적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오바마에겐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미국 유권자들의 마음속에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바꿔 열풍'을 심어 놓았고 스스로 변화의 아이콘으로 정치의 중심에 우뚝 섰다.

변화냐, 경륜이냐를 놓고 대권주자 간 우열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민주당 경선에서 누가 최종적으로 웃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지 진정한 싸움은 이제부터다.

(맨체스터<뉴햄프셔>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