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6월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당시 중국 최고의 실권자 덩샤오핑은 200여명의 귀한 손님을 극진히 접대했다.

룽이런(榮毅仁) 당시 국제신탁투자공사회장을 비롯한 룽씨가문의 일가였다.

룽 회장은 덩샤오핑의 요청을 받아들여 국제투자신탁공사라는 회사를 만든 장본인이다.

개혁개방을 위해선 국제적인 금융회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덩샤오핑은 룽 회장에게 "하고싶은 대로 해라.왜냐하면 당신이 하는 일은 옳다"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룽 회장은 해외자금을 중국으로 끌어들여 개혁개방이 성공할 수 있는 자금을 만들어냈다.

중국 최대 민영기업으로 룽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중신타이푸(中信泰富) 룽원커지(榮文科技) 등은 이렇게 탄생했다.

2007년 10월15일의 베이징 인민대회당.공산당 전국대표대회(全大)가 열렸다.

공산당의 최고지도부를 선출하는 자리에 4억3000만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싼이(三一)그룹 량원건(梁穩根) 회장 등 18명의 대형 자산가가 참석했다.

공산당의 타도대상 1호인 대형 자산가들이 공산당원의 자격으로 전대에서 표를 행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20년 넘게 '공산당과 자본가의 조화'라는 기이한 궁합이 깨지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덩샤오핑이 자본가인 롱 회장 일가를 인민대회당에 초청해 만찬을 베푼 것이나,공산당의 최고정치회의인 전대에서 후진타오 중국국가주석이 "국제경쟁력을 가진 대기업 육성을 장려하겠다"고 한 것은 어찌보면 기괴한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업의 발전 없이 국가의 발전은 없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는 진작 깨닫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덩샤오핑 이전에 마오쩌둥은 1958년 영국과 미국을 추월한다는 초영간미(超英走干美)를 내세우고 대약진운동이라는 경제개발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국가의 절대적인 통제아래서 경제를 부흥시키려던 계획이 문화대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참사로 이어지는 것을 그들은 경험했던 터였다.

중국정부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면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르며 국영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고 있다.

해외에 진출하려는 기업이 자금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은행들이 외국 금융회사를 사라고 정부가 채근하기도 한다.

난징(南京)시처럼 대학 재학생에게 세금으로 창업자금을 대주면서 정부가 청년기업가를 키우는 곳도 중국이다.

세계 500대 기업에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많은 30개 중국기업이 랭크돼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솔직히 이런 추세라면 중국이 한국을 조만간 추월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대한상의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7723건이던 정부의 대기업규제는 작년 8083건으로 늘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정부의 말은 어디로 사라졌나.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 정부는 기업가정신이나 경제활동 동력(動力)이 성장할 수 없게 뚜껑을 닫아 버렸다"고 말했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의 비판만이 덩그렇게 남아있는 것 같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선 자본가라는 말이 사라지고 기업가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한국에선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기업가정신이 실종되고 있는다는 지적이 아프게 다가온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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