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가 최근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아르마니와 에르메네질도 제냐(이탈리아 정장 브랜드) 중 무엇을 살까' 따위가 주제는 아니다.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가 이들의 관심이다.

사모펀드와 투자은행 관계자들이 유명 브랜드의 투자 전망을 살피러 패션쇼와 의류트레이드쇼를 방문하는 것도 생경하지 않다.

명품 브랜드로 이뤄진 '럭셔리 펀드'와 '럭셔리 지수'가 투자자들을 끌고,사모펀드들은 유명 브랜드 인수전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돈을 벌려면 '명품을 소비하지 말고 투자하라'고 말한다.

선진국은 물론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가에서 명품 소비 붐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컨설팅 회사인 텔시그룹은 사치품 판매량이 연간 8% 성장하며 1500억달러(약 140조원) 수준까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신흥시장이 명품 블랙홀

명품 소비 붐의 가장 큰 진원지는 중국이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세계 3위의 명품시장으로 부상했다.

메릴린치는 중국의 백만장자가 총 32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이들은 사치품 소비에 안달나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의 명품 소비에 대해 책을 낸 라다 차다는 "기존 계급 구조가 무너지면서 중국에서 사치품은 자기 과시의 가장 큰 수단이 됐다"며 "명품에 눈뜬 사람은 아직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연간 8%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인도에서도 고급차 벤틀리가 두 자릿수의 판매 성장률을 기록하고 호화 요트 비즈니스가 호황이다.

미국과 일본,중국에 이어 세계 4위 사치품 시장으로 성장한 러시아도 마찬가지.최근 부유층 대상의 전람회를 개최한 쿠도소바 이사는 "한 회사가 내놓은 순금 아기 물병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전했다.

선진국의 명품 구매력은 여전히 강하다.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전년보다 18.5% 늘어난 9억5600만달러(약 8900억원)어치를 팔았다.

텔시그룹은 올해 중간급 브랜드 시장이 3~4% 성장하는 데 비해 명품 시장 규모는 9%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진국 명품 붐은 정보기술(IT) 호황과 글로벌 유동성에 따라 초부유층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고 미국 월간지 리테일트래픽이 최근 호에서 밝혔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소득 상위 10%가 총 인구 소득의 48%를 차지,192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게다가 스타와 대중문화의 높아진 영향력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고급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최고조로 올려놨다.

보스턴컨설팅은 과거 명품은 소득 상위 2%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중상류층이 명품 소비량의 70%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SG자산관리는 명품 수요는 가격에 비탄력적(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음)이어서 최소한 10년 이상은 견조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주목받는 럭셔리 펀드

소시에테제네랄 등 발빠른 곳은 유망 사치품 기업에 투자하는 6500만달러(약 600억원 )짜리 '럭셔리 펀드'를 선보였다.

지난 4월 메릴린치는 크리스찬 디올,불가리,로열 캐리비언 크루즈,로레알 등 분야별 명품 브랜드 50개로 구성된 'ML 라이프스타일 지수'를 선보였다.

프랑스의 BNP파리바,스위스의 방케SYZ 등도 이 같은 '럭셔리 지수'를 구성,명품 소비시장을 겨냥하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 펀드나 지수는 지역별·업종별로 투자를 분산시켜 위험을 줄이도록 설계된다. 예컨대 스위스 회사 도미니언이 내놓은 럭셔리 펀드 '시크'(CHIC,멋)는 유럽 명품 주식에 50.68%,미국 주식에 37.47%,아시아 주식에 11.67% 투자한다. 시크 펀드를 실제 운영하는 블랙락 믈림은 수익률 목표를 10~12%로 잡았다. 수수료도 비교적 높다.

◆명품 기업 인수에 열올리는 사모펀드

세계적인 사모펀드도 럭셔리 산업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지난달 유럽 최대 규모의 사모펀드인 퍼미라는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발렌티노의 지분 30%를 10억달러에 사들였다.

리바,샴페인하우스 등을 보유한 요트 제작업체 페레티를 인수한 지 7개월 만이다.

지난 2월에는 타워브룩 캐피털이 고급 신발 메이커인 지미추를 3억5000만달러에 사들였고,어팩스 파트너스는 미국 패션브랜드 토미힐피거 인수에 15억달러를 들였다.

그동안 명품 산업은 유행에 따라 부침이 심한 점 때문에 투자자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사모펀드들은 명품 기업을 인수한 후 과감한 전략 변경으로 명품 기업 투자에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지미추를 인수한 타워브룩 캐피털은 유능한 경영자인 벤수산을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한 후 지미추의 디자인 컬렉션을 유행을 타지 않도록 다양화했다. 글로벌 리치 캐피털의 윌리엄 스미스는 "사모펀드는 5000만달러를 버는 기업이 2억5000만달러를 벌게 해준다"며 "자본과 경영 전략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브랜드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이비통 등 유명 브랜드들을 소유한 LVMH,리치몬트,PPR 등 멀티브랜드 그룹도 규모의 경제를 내세우며 인수전에 동참하고 있다.

매출 500만달러 수준의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에는 개인투자자들이 달려들고 있다.

◆높은 마진 못지않은 투자위험

미국 사모펀드 TPG는 스위스 신발 메이커인 발리를 1999년 인수했다.

하지만 당시 최고조로부푼 주식 거품이 꺼지자 발리를 회생시키는 데만 5년이 걸렸다.

씨티그룹의 카말 타베트 재정지원팀장은 "사치품 분야에서는 손익이 분명하다"며 "투자 시점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품 업계 투자의 성패는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지켜가느냐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단기 투자에 치중하는 사모펀드들이 이를 등한시할 경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고급 의류 회사 센존을 인수한 베스탈 캐피털은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를 모델로 기용하며 젊은 여성 공략에 적극 나섰지만 기존 소비자인 중년층이 이탈하면서 브랜드 가치는 크게 망가졌다.

베어스턴스의 투자분석가 하워드는 "모두 구찌처럼 되기를 바라지만 성공은 쉽지 않다"며 럭셔리 투자 붐을 경계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