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자는 나폴레옹 1세와 곧잘 비교된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강력한 카리스마 때문만은 아니다.

이민자 출신의 아웃사이더에서 권력의 핵심에 오른 정치 인생이 나폴레옹 못지 않기 때문이다.

변방의 코르시카 출신이었던 나폴레옹처럼 사르코지의 배경도 이색적이다.

그는 2차 대전 후 공산 정권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한 헝가리인 아버지와 그리스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정치 엘리트들이 다니는 그랑제콜인 에나(ENAㆍ국립행정학교)를 나오지도 않았다. 대신 파리 10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정치는 그의 '영원한 첫사랑'이었다.

19세 때 보수당 선거운동으로 시작한 정치 경력은 28세 때 파리 교외 뇌이 쉬르센의 시장 당선으로 '고속도로'를 탔다.

그는 1993년 관내 유치원에 폭탄을 들고 침입한 인질범을 직접 설득하는 용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린이를 팔에 안고 구출해 나오는 당시 사르코지의 모습은 전국에 방송됐다.

위험에도 꿈쩍하지 않는 행동파의 이미지가 대중에 알려진 첫 계기였다.

이후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 내각에서 예산장관에 기용되면서 중앙정치에 입문했다.

시라크 계파였던 그는 1995년 대선에서 발라뒤르를 지지하면서 시라크 측의 라이벌이 됐다.

2002년 총선에서 대중운동연합(UMP)의 압승에 기여했음에도 총리 대신 내무장관에 머물러야 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이를 기회로 범죄 척결에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면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재무장관을 거쳐 2005년 내무장관직에 복귀해서도 '터프가이' 역할이 계속됐다.

2005년 이민자에게 '쓰레기','진공청소기를 써야 한다' 등의 거친 언사를 쏟아내 프랑스 소요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했다.

민감한 이슈에 대한 과감한 대처와 직설적인 발언 때문에 그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이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 2일 TV 토론에서는 사르코지도 발언 수위를 조절하며 강성 이미지를 완화하는 데 주력했다.

측근들은 사르코지의 거친 면이 오히려 '심리적 연약함'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영국 주간지 옵서버는 "그의 거친 언사는 아내 세실리아와 파경을 맞았던 당시 불안감이 표출된 것"이라는 친구의 주장을 싣기도 했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그에 대해 '정치적 아웃사이더에서 톱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투쟁해온 인물'이라며 '개혁의 시급성을 잘 알 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평가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