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중.북 견제-미.일동맹 강화 포석"
"대(對)한ㆍ일 무기판매 차별" 지적도


미국이 미.일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세계 최강으로 평가되는 F-22전투기를 일본에 판매할 뜻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속내는 무엇일까.

데니스 윌더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 담당 보좌관은 지난 25일 "일본에 차세대 전투기(F-22)를 공급하는 논의를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일본이 F-22 도입을 추진 중이라는 외신 보도에 침묵을 지켜왔던 미 정부 당국자가 보도 내용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측의 이런 입장은 중국을 견제하고 북한을 압박하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과 미.일동맹 강화에 따른 동아시아 패권 유지, 자국 방산업체 독려 등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대중 견제-대북 압박 전술 = 일본군 내부 사정에 밝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한 전문가는 "미국이 F-22 일본 판매 가능성을 흘린 데는 중국과 북한에 의도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윌더 보좌관은 일본의 F-22 100대 구입설에 대한 기자들 질문을 받고 "중국은 공군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핵개발 능력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우리는 차세대 전투기 판매에 대해 일본측과 협상할 충분한 용의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KIDA 전문가는 윌더 보좌관의 발언에는 중국이 공군력을 현대화하면 동아시아에서 힘의 불균형이 초래되고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도 그 틈새를 이용해 핵, 미사일 등 비대칭전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감이 배어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미측은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극단적인 국면에서는 군사적으로 '분명한 대가'가 치러질 것임을 은연중 암시하기 위해 F-22 판매 가능성을 흘린 것으로 분석된다는 게 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는 윌더 보좌관의 발언이 이런 미측의 의중을 내비친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일 군사동맹 강화 = 일본은 2009년까지 전투기 250대를 차세대 기종으로 교체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 가운데 일본이 차세대 전투기로 F-22 100대를 구매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우리 돈으로 약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측은 이미 이 같은 규모의 예산을 확보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일본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전 의제 조율 과정에서 F-22 구매 문제를 정식 의제화하자고 요구, 미측이 '협상 용의'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측은 미.일 군사동맹 강화 의지를 보여주고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불안해 하는 일본을 다독거리려는 속마음에서 일본의 요청을 수용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KIDA의 다른 전문가는 "F-22 대외판매는 미 의회 승인 사항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대일 판매 성사 여부를 가름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미측이 협상 용의를 표명한 것은 정상회담 분위기를 띄워 미.일동맹을 과시하려는 뜻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일미군과 일본 항공자위대가 26~27일 오키나와 인근에서 가데나 기지에 임시 배치된 F-22를 처음으로 양측 연합훈련에 투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밖에 미 정부가 대선 경선 과정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모금하는데 역할이 컸던 자국의 군수업체들을 고무시켜주는 측면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미, 한.일 무기판매 차별 = F-22 대일 판매 가능성을 밝힌 미국의 태도가 차별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2005년부터 미측에 고(高)고도 무인정찰기(UAV)인 글로벌 호크를 판매해주도록 요청하고 있으나 미측은 의회 승인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국방부는 2006~2010년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2008년께부터 고고도 UAV 4대를 해외구매한다는 계획에 따라 2005년 6월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력위원회(SCC) 회의에서 글로벌 호크 판매를 처음 타진했다.

작년 9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방산.기술협의회(DTICC)에서도 글로벌 호크 판매를 요청했으나 미측은 UAV가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의 수출 금지규정에 묶여 있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나 F-22와 글로벌 호크 모두 해외판매를 위해서는 미 의회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일본에 대해서는 협상용의가 있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한국의 요청은 거절하는 미측의 자세는 이중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제정보 분석기업인 '스트래트포'는 작년 9월 '한국군 미래에 대한 재고'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이 글로벌 호크 등 첨단 군사기술을 한국에 판매하지 않으려는 것은 한국군의 전력이 한반도 밖으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고 특히 우방인 일본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