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2시45분 미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 있는 사립 학교인 노던밸리 가톨릭 아카데미. 학교가 끝나자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나온다. 얼핏 보아 절반 이상이 한국 학생이다. 자동차를 기다리다가 아이들 4명이 농구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이 원단 한국말이다. "야,그리 보내면 어떡해" "공에 바람이 빠졌나 봐" 등. 미니밴 한 대가 도착하자 그 중 3명이 한꺼번에 올라탄다. 이들은 이 학교 7학년과 8학년(중학교 1,2학년)인 학생들. 3명 모두 한집에 산다. 부모와 떨어져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나홀로 유학생'이다.

1학년부터 8학년까지 다니는 이 학교엔 유독 한국 조기 유학생이 많다.

6학년에서 8학년까지는 한국 학생 비중이 70%를 넘는다.

5학년의 경우에도 21명 중 7명이 한국 학생이다.

이처럼 이 학교에 한국 학생들이 몰리는 것은 유학생 비자를 받아 입학할 수 있는 사립 학교이면서도 학비가 연 5000달러로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6학년 이상은 부모와 떨어져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나홀로 유학생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아예 미국에서 대학까지 진학할 생각이다.

5학년 이하는 아빠와 헤어져 엄마와 함께 온 '기러기 유학생'이 많다.

5학년 7명 중 6명이 기러기 유학생이다.

이들은 1,2년 단기 체류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게 목적이다.

이들은 모두 원대한 꿈을 품고 바다를 건너왔다.

엄마와 함께 왔거나 홀로 왔거나 꽉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열심히 공부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이들도 처음엔 언어적 한계에 부딪친다.

이어 한국 학교와는 판이한 미국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문화적 갈등을 겪는다.

더욱이 미국 학교들은 부모와 함께하는 활동을 많이 한다.

숙제도 그렇거니와 각종 학교 활동도 부모와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나홀로 유학생의 경우 법적 보호자(가디언)가 이 역할을 해 주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같은 처지인 한국 학생들과 한국말로 어울리게 된다"는 게 이 학교 박모군의 설명이다. 조기 유학의 장점은 많다. 어린 나이일수록 영어 습득이나 문화적 적응이 빠르다.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도 용이하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기숙사가 딸린 사립 학교인 보딩 스쿨에서 생활한 이모씨는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으니 오히려 자율성이 길러지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기 적응을 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교민 K씨는 친구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해 한국에서보다 두 학년 낮춰 사립학교 8학년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웬걸.영어가 되지 않다 보니 학교 생활에 시큰둥하다.

집에 와도 친구가 없어 거의 컴퓨터하고만 지낸다.

그러다 어느날 학교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졸기만 한다"는 게 학교의 설명이었다.

고민 끝에 K씨는 한국에 있는 아이의 부모와 상의해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합의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걸 혼자 처리하려다 보니 고독감이 배인다.

더욱이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야 해 언어적 문화적 갈등에다 가족의 해체라는 이중의 고통도 떠안아야 한다.

기러기 유학생의 경우 관광 비자를 받아 입국한 엄마가 수시로 출국해야 해 정서적으로도 좋지 못하다.

개인 교습 등 뒷받침이 충분하지 않으면 목표로 하는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쉽지 않다.

비단 희대의 살인극을 저지른 조승희씨 사건이 아니더라도 자녀들을 조기 유학 보내려는 부모들은 조기 유학의 빛 못지않게 그늘도 생각해 볼 시점이다.

뉴욕=하영춘 특파원/허원순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