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폭탄 테러범 '유나보머' 모방한 듯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 총격 참사사건의 범인 조승희(23)가 미NBC TV에 자신의 범행 목적을 밝힌 우편물을 보낸 것은 자신의 범행을 대의를 위한 일종의 '테러'로 합리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그간의 조사 결과 정서 장애를 겪어온 조씨가 내면에 분노를 가득 지닌 채 외톨이로 지내오다,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일시에 분출한 것을 범행의 배경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직접적인 동기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해왔다.

조씨는 지난 2005년 11월과 12월 두 여학생을 각각 스토킹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나 정작 두 여학생은 화를 면했으며, 그가 가장 먼저 기숙사에서 살해한 여학생도 조씨와는 특별한 연관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웬델 플린첨 버지니아텍 경찰서장은 "조씨로 부터 스토킹을 당한 두 여학생은 모두 대량 살상의 피해를 면했다"고 말하고 또한 "조씨와 희생자 32명간의 명확한 연결 고리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고 언급, 조씨의 범행이 특정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것임을 시사했다.

조씨가 NBC 스티브 캐퍼스 사장 앞으로 보낸 문제의 소포를 부친 시각은 1차 범행후 1시간 45분이 지난 16일 오전 9시 1분.
1차 범행후 2차 범행 착수까지 2시간이나 걸렸던 이유가 처음 풀린 것이다.

이 소포에는 1,800 단어 분량의 장황한 글과 이를 읽는 조씨의 모습, 두 권총을 들고 흔드는 모습의 비디오 등이 담겼다.

미국 언론들은 조씨가 읽은 글을 '선언문'(Manifesto)으로 명명했다.

조씨는 이 선언문을 통해 부자, 기독교에 대한 악담을 퍼붓고 특히 쾌락주의에 대해 경고하고 보복을 선언했다.

"벤츠, 금목걸이로도 충분치 않아 이 속물들아","너희들의 방탕함도 너의 쾌락적 요구를 채워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너희들은 모든 것을 가졌어", "너희들은 오늘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기회와 방법이 있었는데 너희들은 내 피를 흘리길 결정했어" 등등.
이 선언문으로 볼 때 앞서 기숙사에서 발견된 "너 때문에 이 일을 저지른다"(You caused me to do this)는 조씨의 메모는 특정 여학생이 아닌 일반인 전부를 지칭하는 것이며, 자기 범행이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에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임을 주장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수법은 지난 1970년~1990년대 이른바 '유나보머'(Unabomber)라고 불린 연쇄 편지폭탄 테러범 시어더 카진스키가 '유나보머 선언문'이라고 명명된 '산업 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편지를 통해 현대기술 문명 위험성 경고를 자신의 범행 목적이라고 주장한 것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테러로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을 부상시킨 카진스키에게 '유나보머'란 별명이 붙은 것은 그가 주로 대학(University)과 공항(Airport)에 우편 폭발물을 보낸 데 따른 것이다.

(워싱턴연합뉴스) 박노황 특파원 n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