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총리 방북 전 입장 전달..北 납치 인정"

"평양선언 日기업 참여길 열어..남북경협과 충돌 가능성"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2002년 9월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에 앞서 북측에 관계정상화에 따라 경제협력을 실시한다면 100억달러(10조엔) 규모의 무상지원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주장이 12일 제기됐다.

또 이와 별도로 유상으로 제공될 엔차관은 최빈곤국에 제공되는 0.75% 금리를 적용해 10년거치 30년 상환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배충남 사무관은 지난해 일본 쯔꾸바(筑波) 대학에 제출한 '경제협력과 인도지원:남북관계 진전과 일본외교'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일본의 대북경제협력자금은 현금이 아닌 역무와 재무재를 10년간 분할해 100억달러를 제공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유상으로 제공될 엔차관은 최빈곤국에 제공되는 0.75% 금리를 적용해 10년 거치 30년 상환 조건이었고 제공방식은 수입결재 자금, 프로젝트 차관, 공공사업 추진 차관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고 지적했다.

배 사무관은 논문에서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 방북 이전에 북한경제전문가와 외무성, 경제통산성 등 관계부처로 이뤄진 연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대북경제협력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총리 방북 이전에 북한측에 전달했다"며 "과거보상문제는 양국이 재산청구권을 상호 포기하고 일본의 무상자금협력과 저리의 장기 차관을 제공하기로 합의돼 실무적인 절차만 남기고 타결된 상태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 큰 외교'를 보여 국가범죄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배 사무관은 2005년 2월부터 2년간 일본에 머물면서 외무성 등 당시 대북업무에 종사했던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북일 평양선언의 2항에 '민간의 경제활동을 지원한다'고 명확히 기술된 것은 북한과 경제협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일본 재계, 기업들에 조건부(tied)방식의 참여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을 의미한다"며 "과거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를 제공받았던 국가로부터 조건부 방식의 경제협력으로 국가경제가 일본에 예속되어 간다는 비판을 감안해 비조건부(untied)방식으로 전환됐던 일본의 ODA방식이 대북경제협력방식으로 부활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형태로 북일간 국교정상화가 이뤄지고 일본의 경제협력을 실시하게 된다면 일본 정부의 공적 자금으로 일본 재계와 기업이 대북사업에 뛰어들어 한국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경제협력 방식과도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 사무관은 논문에서 대북인도적 지원과 관련, "한국과 국제사회가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 곡물, 비료, 의약품 인도지원물품이 인간의 안전보장(human security) 개념의 중요요소인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문제해결에 기여하고 있다"며 "국제사회도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루는데서 국제인권규약 가운데 'A규약'으로 불리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우선적인 중점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