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와 모리셔스 중간에 면적이 1㎢쯤 되는 트로멜린이라는 조그만 무인도가 있다.

나무가 없고 단지 일부 지역에 덤불만 뒤덮여 있는 이 모래섬은 그러나 과거 230년전 이 곳에 버려진흑인 노예 60여명이 15년동안 죽음과 맞서 싸운 끝에 30여명이 살아난 현장이기도 하다.

또 '백인 신사'들에 의해 인간이기를 거부당한 흑인 노예들이 물과 먹을 것을 제공받지 못해 굶어죽어갔고 섬에 15년동안 버림을 받은 '아픈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5일 프랑스 해양고고학자 맥스 궤후가 이끄는 10명의 탐사팀이 지난해 10월부터 한달동안 이 곳에 거주하면서 조사, 발굴한 내용과 함께 영국과 프랑스의 과거 문헌기록을 조사한 결과 밝혀낸 이같은 내용을 소개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761년 7월 3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바욘항을 출발한 프랑스 선박 루틸이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 이 모래섬에 좌초한 것.

모래섬에 무사히 도착하는 데 성공한 인원은 백인 신사들과 선원 122명과 흑인 노예 80여명이었다.

당초 이 배에는 약 150명의 마다가스카르 출신 원주민들이 꾐에 속아 노예로 팔려지기 위해 승선해 있었으나 수용돼 있던 곳의 비상구가 잠겨 있는 등의 이유로 70여명이 수장됐다.

백인 신사.선원들은 배에서 가져온 식량 등으로 연명할 수 있었으나 곧 물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로인해 흑인 노예들에게는 아무런 먹을 것이 제공되지 않았으며 약 20명이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서 숨졌다.

이런 가운데 백인 신사.선원들은 몇 주일 후에 우물을 파는 데 성공했고 이어 난파된 지 6개월만에 좌초된 루틸에서 뜯어낸 목재 등으로 보트를 완성하는 데 성공, 당시 프랑스령인 모리셔스로 탈출했다.

노예들에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60여명의 흑인 노예들은 이후 15년 동안 거북이와 바다새를 잡아 먹으면서 생존해야 했다.

당시 이 배의 항해일지와 관련 기록엔 백인 신사들과 선원들이 모리셔스 총독에게 구조선을 보내줄 것을 청원했지만 당시 영국과 7년전쟁을 벌이고 있던 정황에서 거부당했다고 기록돼 있다.

프랑스동인도회사 소속인 총독은 구출하러 보낸 배가 또다시 난파될 가능성을 염려한 데다 굳이 흑인 노예들을 구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궤후팀은 지난해의 탐사 결과 당시 흑인들이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화덕과 구리로 된 주방용 구 및 산호초와 모래를 이용해 쌓은 건물 벽 잔해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거북이와 바다새, 조개유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탐사팀은 흑인 노예들이 열악한 사막섬에서도 서로 질서있게 협동하는 가운데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15년이 경과한 뒤인 1776년까지 생존, 구조된 흑인은 모두 14명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섬 부근을 지나다가 흑인들을 발견한 한 프랑스인 선원이 보트로 접근하다 좌초했으나 나중에 6명의 흑인을 데리고 모리셔스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어 선장 트로멜린이 이끄는 구조선이 이 섬에 도착해 나머지 흑인 8명을 구출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따 섬 이름을 정했다.

한편 구조된 흑인들은 앞서 18명의 다른 생존 흑인들이 별도로 작은 보트를 만들어 섬을 탈출했다고 프랑스 조사관들에게 밝힌 것으로 관련 기록은 전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탈출하거나 구조된 이들의 이후 행적과 후손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민철 특파원 minch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