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29일 실시된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그동안 자신과 집권당을 둘러싸고 전개돼온 스캔들을 극복하고 다시 정국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룰라 대통령은 1년 전만 해도 집권당의 야당의원 매수의혹 폭로로 대통령직 자진사퇴를 요구받는 처지를 겪었다.

야권과 법조계로부터 탄핵발의 공세가 이어지며 자신의 최대 무기인 국민적 지지도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했다.

올해 대선을 코 앞에 둔 지난달 중순에는 집권당이 야당 유력 정치인들에 대해 비리의혹을 조작했다는 이른바 '집권당 음모론'이 터져나오면서 또 다시 위기에 처했다.

이 때문에 지난 7월 대선후보 등록 이후 압도적 우위를 달리던 여론조사 지지율은 하락세를 거듭했으며, 결국 1차 투표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결선투표를 실시해야 했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폭넓은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또 한번 위기에서 살아나는 뚝심을 발휘했다.

룰라 대통령은 방송사들이 주최한 TV 토론에 불참하면서까지 서민층을 찾아가는 현장 유세를 계속했으며, 저소득층과 빈민층, 노동자, 농민들은 이런 룰라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했다.

사실 브라질 유권자들은 룰라 대통령이나 집권 노동자당(PT)을 둘러싸고 전개돼온 정치권의 부패.비리 스캔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보다는 지금 당장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가난에 따른 생계 곤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사회의 뿌리깊은 빈부격차 문제에서 오는 유권자들의 이 같은 심리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재선에 성공한 룰라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국민적 인기와 강력한 카리스마를 확인함으로써 향후 4년간 각종 개혁작업을 주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한 셈이다.

룰라 대통령은 외교정책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남미 통합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을 축으로 하는 통합 과정에 더욱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를 가입시켜 메르코수르의 몸집을 불린데 이어 중남미의 또 다른 경제기구인 안데스공동체와의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남 협력의 강화도 관심거리다.

지난해부터 아프리카 및 아랍권과의 관계 강화를 추진해온 룰라 대통령은 지난달 인도-브라질-남아공(IBSA)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남남 협력을 본격화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인도를 연결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는 한편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남남 협력과 함께 개도국 리더국가의 입장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점 등은 룰라 대통령이 집권 이후 역점을 두고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교도부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브라질이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강화하는데는 미국과의 우호관계가 큰 힘이 돼줄 것으로 보인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해 잇따라 실시되고 있는 중남미 각국의 선거 과정을 지켜보면서 브라질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전해졌다.

중남미 대륙을 휩쓴 좌파 열풍이 페루와 멕시코 선거를 거치면서 주춤해진데 이어 룰라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으로서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등의 반미(反美) 노선으로 혼란스러워진 대(對) 중남미 외교에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을 완충지대로 내세워 중남미 외교를 원격조정하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이 룰라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해줄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재선 성공에도 불구하고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지역간, 계층간 갈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전체 1억2천600만명의 유권자가 남북으로 갈리면서 지역적으로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초래한데다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분열 양상이 그동안의 유세 과정이나 여론조사기관의 조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야권과의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이 같은 사회적 부조화를 적절하게 치유하지 못할 경우 안정적 성장의 지속에 2기 정부 운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룰라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통신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