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고지 9부능선을 넘었다"

아드보카트호 태극전사들이 '아트사커'의 명성을 자랑하는 강호 프랑스와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한 19일 새벽. 찬 이슬을 맞으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뜨거운 야외응원을 펼친 축구팬들은 감격의 여명을 맞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전국에서 거리로 나선 70만명의 붉은악마들과 가정에서, 직장에서, 맥주집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다시 한번 재연된 감동의 드라마에 울고 웃으며 1만㎞나 떨어진 독일 라이프치히의 태극전사들과 기쁨을 나눴다.


◇전국서 '대~한민국'의 붉은물결 = 지난 2002년 한국의 월드컵 첫승을 일궈냈던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는 6만명의 젊은 축구팬들이 운집해 경기의 흐름에 따라 울고 웃음을 거듭했다.

붉은악마들은 전반 9분 앙리가 찬 공이 골망을 출렁이자 '아트사커'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전반 내내 한국 대표팀이 프랑스 골문을 향해 제대로 된 슈팅 한번 날리지 못하자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후반 35분 설기현의 우측 센터링으로 시작된 공격이 박지성의 발끝에서 골로 완성되자 축구팬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함성을 외치며 골의 기쁨을 두배로 느꼈다.

광주에서는 전남대 후문에 1만명, 광주월드컵경기장에 2만5천명이 각각 모여 '오 필승 코리아'를 연호했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한국팀의 승리를 자축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도 2만여명의 시민들이 전광판을 제외한 나머지 3개면 관람석을 가득 메운 채 전광판을 주시하며 이날 동점골을 넣은 수원 출신 박지성의 이름을 연호하며 흥분에 겨워 경기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자리에 앉을 줄 몰랐다.

이른 새벽시간에 경기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서울에서 27만명이 거리응원을 펼친 것을 비롯해 경기 9만명, 부산 15만명, 광주 3만명, 제주 2만명 등 전국에서 70여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전국을 붉은 파도로 뒤덮었다.

◇대학ㆍ아파트도 열광 = 기말고사를 앞두고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던 대학 도서관도 프랑스전을 응원하려는 학생들이 속속 자리를 뜨면서 텅 비었다.

이날 새벽 3시까지 전남대 도서관은 기말고사 기간을 맞은 학생들로 열람실 대부분이 꽉 찼지만 경기가 시작되는 4시를 앞두고 학생들은 속속 도서관을 빠져나가 학교 후문의 응원대열에 합류했다.

전국의 아파트 단지는 프랑스전을 관전하며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려는 집들이 많았고 초저녁처럼 불을 밝혀 놓아 거의 불야성(不夜城)을 이뤘다.

울산 북구 천곡동 코아루아파트의 경우 다섯집 가운데 3~4집 꼴로 불이 켜져 있고 남구 달동 SK아파트도 3집 중 2집 이상이 불을 밝혀 평소 일요일 밤에 비해 많은 시민들이 깨어 축구의 열기 속에 뜨거운 여름밤을 보냈다.


◇ 바다에서, 산에서도 대한민국 = 설악산 대청봉에서도, 태평양 망망대해에서도 태극전사들의 활약을 기대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날 새벽 설악산 최고봉인 해발 1천708m 대청봉 인근 중청대피소 로비에 마련된 TV를 통해 응원을 펼친 등산객들은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자 기쁨에 겨워 함성을 외쳤고 이 함성은 곧 백두대간에 메아리쳤다.

중청대피소 직원 이돈희씨는 감격에 겨운 듯 "숙박객 모두가 끝까지 경기를 지켜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며 "동점골과 함께 터진 환호가 온 산천을 깨우고도 남을 만큼 굉장했다"고 말했다.

남해안 통발업계 사상 최초로 지난달 중순 통영을 출항, 남태평양 마셜제도에서 새로운 어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통영선적 79t급 '101광민호'와 '318성덕호' 선원과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원 등도 이역만리 떨어진 남태평양 한가운데서 위성수신기를 통해 프랑스전을 지켜봤다.

또 국토의 최동단 독도에서는 필수근무 인력을 제외한 경비대 대원 20명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동해가 떠나가도록 '대~한민국'을 외쳤다.

◇'찜질방 응원' 인기 = 이른 새벽에 경기가 진행된 탓에 지난 토고전에 비해 야외 응원장소가 줄어들면서 피로도 풀고 대형 화면으로 응원을 할 수 있는 전국의 찜질방에 축구팬들이 몰려들었다.

한국팀 경기일마다 선착순 500명을 무료 입장시키고 있는 전주시 인후동 한 찜질방에는 직장 동료나 친구, 가족단위 손님 400여명이 몰려 태극전사들의 선전에 환호했다.

김영기(33.완주군 소양면)씨는 "집에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한 뒤 곧바로 출근하기가 부담스러워 동생과 함께 비교적 직장과 가까운 찜질방으로 왔다"고 말했다.

◇태극전사 가족들 "지옥과 천당 오가" = 선제골을 내주고 마음을 졸이던 태극전사 가족들도 박지성의 동점골이 터지자 비로소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박지성 선수의 할머니 김매심(70)씨는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손자의 모습을 경기도 수원에서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며 "역시 내손자!"라며 기쁨의 감탄사를 터뜨렸다.

김 할머니는 "지성이가 골을 넣을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극적으로 골을 넣을 준 몰랐다"며 "남은 경기에서도 제발 다치지 말고 잘 뛰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후반전에 값진 크로스를 올려 골로 연결하게 한 수훈을 세운 설기현의 어머니 김영자(50.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씨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제 프랑스 전에서 제대로 몸을 푼 만큼 다음에는 반드시 골까지 넣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프랑스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내 승리를 이끈 '거미손' 이운재의 어머니 박복례(68)씨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무승부를 기록해 다행"이라며 "경기를 보는 동안 가슴이 떨려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고 말했다.


(부산.광주.수원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