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경제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시대가 31일 막을 내린다.

지난 1987년 8월 FRB 의장으로 취임한 그린스펀은 18년6개월 동안 경제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다.

재임 기간 동안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앞을 내다보는 점쟁이 같은 혜안으로,때로는 능구렁이 같은 유연함으로 난관을 극복해 왔다.

그 결과 미국은 1990년대의 신경제를 창출했으며 세계 경제도 안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의 경제대통령직 18년6개월.누군가는 "너무 오래 해먹었다"고 투덜거릴만도 하지만,권좌에서 내려오는 그에 대해선 아쉬움과 칭송 일색이다.

'화려한 경제성장의 뒤에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와 국가부채를 남겼다'는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판은 그의 존재가치를 더욱 부각시키는 들러리일 뿐,그의 위업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는 게 월가의 시각이다.

◆스스로 만든 경제대통령의 권위

그린스펀은 경제대통령 자리에 취임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 경제대통령의 권위와 신뢰를 만들어 갔다.

첫 시련대는 취임 2개월 후인 1987년 10월19일.주가가 대폭락하는 '블랙 먼데이'가 발생했다.

그린스펀은 즉각 금리를 내려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그 결과 주가는 다시 상승,그의 존재가치가 처음으로 입증됐다.

신경제가 꽃피었던 1990년대도 그린스펀에게는 위기로 시작했다.

1990년 8월 걸프전이 터지자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물가가 뛰었다.

경기 하강에 직면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아버지 부시)이 통화 팽창을 요청했지만 그린스펀은 오히려 긴축정책을 고수했다.

이듬해 국제 유가가 하락할 무렵에야 금리를 인하,빌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 경제 최대의 호황을 가져오는 토대를 구축했다.

그 뒤도 마찬가지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의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물론이고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2001년 9·11사태 이후에도 그의 대처 방식은 용한 점쟁이처럼 들어맞았다.

특히 2000년 5월 연 6.5%에 달했던 금리를 46년 만에 최저인 1%까지 끌어내리는 용단에 세계 경제도 회복으로 화답했다.

그러니 '마에스트로(거장) 그린스펀이 하면 된다'는 믿음은 더욱 철석같아졌다.

덩달아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도 확고해졌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미국 경제는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107개월이라는 유례없는 장기 호황을 기록했다.

두 차례 경기 침체가 있었지만 그 여파는 크지 않았다.

다우지수는 2000대에서 10,000대로 5배 이상 뛰었다.

실업률은 4%대로 떨어졌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대로 안정됐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신경제'는 '그린스펀 경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냉키에게 독(毒)이 든 성배를 건넸다'

경제대통령의 퇴임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그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비판의 핵심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가계와 국가를 후임자인 벤 버냉키에게 물려준다는 것.워싱턴포스트는 "그의 재임 기간에 미국 경제가 누렸던 번영은 저금리정책에 따라 늘어난 빚을 기반으로 이뤄졌다"며 "그린스펀 의장은 빚투성이 나라를 남기고 떠난다"고 보도했다.

실제 작년 9월 말 미국의 가계부채는 11조400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작년 무역적자도 사상 최대인 7000억달러를 웃돈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금융감독청(FSA) 의장이자 영국 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 부총재인 하워드 데이비스는 "미국의 고질적인 병폐인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재임 기간 중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줬던 그린스펀 의장의 명성에 오점으로 남았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이런 비판조차도 후임자인 버냉키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일 뿐 그린스펀의 업적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능력일까,행운일까

버냉키 의장 지명자는 FRB 이사 시절 그의 지론인 '인플레이션 타기팅(물가관리 목표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주장을 접어야 했다.

그린스펀의 반대 이유는 "중앙은행의 정책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것.많은 전문가들은 그린스펀 성공의 첫 번째 비결로 바로 유연성을 꼽는다.

교과서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한 점이 위업을 이룰 수 있었던 기본 요소라는 분석이다.

평상시 대화에선 직설화법을 즐겨쓰는 그가 FRB 의장 자리로만 돌아가면 모호한 단어를 사용한 것도 유연성 확보를 위한 의도적 노력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현실 감각과 유연한 정책 운용도 그의 성공 비결이다.

1990년대 선보인 선제적(preemptive) 금리정책,1996년부터 시작된 FRB의 '비개입정책'은 시장의 변화를 읽은 그의 탁월한 능력의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그의 성공 요소 중 행운도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된다.

재임 중 기술 진보와 자유무역이 활짝 꽃을 피운 데다 세계적인 정치 안정으로 그의 정책이 힘을 발휘했다는 주장도 있다.

로저 이버슨 예일대 교수는 "그린스펀은 생산성 향상에 대한 맹신에 취해 있어 경기억제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며 "결과만 놓고 그를 마냥 치켜세우는 건 곤란하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기술 진보와 세계적 정세 변화까지 미리 꿰뚫고 그의 '생산성 맹신정책'이 취해졌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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